아시는 분은 금방 눈치 채셨겠지만 요즘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인생시계」에 대해서 알려드릴까 합니다. 「인생시계」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쌤앤파커스」책에서 나오는 내용 중 하나로, 우리 인생을 24시간 시계로 표현한 것이죠.
많은 청춘들이 지금껏 이뤄 낸 것도 없고,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며 하소연을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많은 청춘들이 시간의 속도 앞에서 낙담하고 전율한다고 서술합니다.
덜컥 졸업을 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조급함과 낙담의 시간으로 남으며, 취직하여 사회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었을까?, 빨리 자리 잡고 싶고, 빨리 뭔가를 이루고 싶고, 누구나 “이 나이 되도록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구나” 생각하게 마련이죠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그대, 인생을 얼마나 산 것 같은가?”라고 막연한 질문 같지만 다른 표현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지금 현재 당신은?....
태양이 뜨거운 정오?, 아님 경찰관에 입문한 이십대 후반이라면 오후 1~2시?, 막연한 상상만 할 게 아니라 계산을 한번 해보시죠. 만약 서른살에 경찰에 입문했다고 하면 하루 중 몇시일까요. 당신의 평균수명이 80세 쯤 된다고 하면, 30세는 몇 시?
오전 9시!!
생각보다 이르지 않나요? 오전 9시 직장에 출근해서 이제 일을 막 시작할 시간이죠? 말 그대로 이제 시작할 때입니다. 이 「인생시계」의 계산법은 생각보다 쉽다. 24시간은 1,440분으로 이것을 80세로 나누면 18분이다 1년에 18분씩 늘어난다 20세는 오전 6시, 29세는 8시 42분이다. 앞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인생시각은 좀 더 여유로워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은퇴를 하고 노년을 준비하는 60세는?
저녁 6시!! 직장인이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거나 저녁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다. 맞아 떨어지죠? 한번 계산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쯤 계신가요?
「인생시계」계산이 어려운가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분이라면 인생시계에 대한 어플도 있으니 활용이 가능합니다. 제 나이 28세를 넣으니 현재 시간 오전 8시 24분...
“지금껏 뭐했나, 앞으로 답답하네”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 집니다. 아직 업무 시작도 안했을 시간인데 벌써부터 포기했나 싶기도 하구요
우리가 잘 아는 브래트피트 주연의 영화 <벤자민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에 이런 대사가 있죠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여러분의 생각은?
항상 과거에 얽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의 인생시계를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 보시죠 지금 하고 싶은게 있으신가요? 주저 말고 시작해 보세요... “지금하지 않으면 영원히 실천할 수 없다” 저도 도전할까 합니다. 이제 오전인데요 뭘... 늦었다고 주저할 필요도 , 너무 빠르다고 포기할 필요도 없겠는데요.
愼獨(신독)은 조선시대 퇴계선생과 율곡선생이 강조했는데, 조선의 성리학은 원래 중국의 성리학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송대에 주자는 북송의 여러 사상가의 이론을 집대성해서 주자학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퇴계선생과 율곡선생도 주자를 큰 선생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송대 성리학이 이론적 체계를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경전이 바로 <논어><맹자><대학><중용>등의 <사서>이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오경중 하나인 <예기>의 한 편이었는데, 송대 성리학자들은 이 두편을 <예기>에서 끌어내 단독편으로 연구해서 성리학의 사상적 기반을 세우는데 이용하게 된다. <대학>은 일반적으로 정치에 관한 유학이상(외왕지학)을 설명한 것이라면 <중용>은 마음의 본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수양할 것인가를 논하는 심성지학(내성지학)이다. 송대성리학에서 <사서>의 영향력은 다른 경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해석) 이른바 그 마음의 뜻을 진실하게 한다는 것(“성의”)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같이 해야 하니, 이것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 삼가고 경계한다. 소인은 한가이(홀로) 있을 때 나쁜 짓을 함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다. 군자를 보고난 후 부끄러워 하면서 자신의 나쁜점을 숨기고 자신의 좋은 것을 드러내려 한다. 남이 자신을 보기를 자신의 폐간 보는 것 같이 하는데, 그러한 것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것은 마음 안에서 진실하게 한 것이 밖으로 드러난다고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한다.
(해석) “도”란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떠나 있다고 한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숨은 곳(아무도 안보는 데)에서 보다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은미(역시 아무도 안보는 데)한 데에서 보다 자신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신독”이란 바로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아무도 안볼 때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바로 다스릴 것을 강조합니다. 신독은 “誠意(성의)”(자신의 뜻을 진실되게 함)를 해석하면서 거론된 말입니다.
<대학>은 원래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고 알려져있는데, 현대의 대부분의 학자는 이 두 책을 전국말기 유가학자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연구에 근거한다면 이 두 책은 누가 지었다고 확정하기는 많은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
"슬픔과 노여움을 가지고 있지 않는자는 국가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 네크라소프[ Nikolay Alekseyevich Nekrasov ]-러시아의 시인, 잡지 편집인.(1821~1878). 혁명적 민주주의 잡지 《동시대인》, 《조국 잡기(祖國雜記)》를 주재하면서 농민들의 운명을 노래한 시를 지어 농노 해방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작품에 <러시아는 누구에게 살기 좋은가>,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
- WHY NOT(불온한 자유주의 자유시민의 세상읽기)
저자 유시민 | 출판사 개마고원 2000년 02월 17일 출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모든 슬픔과 노여움을 고작 글쓰기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가 부끄럽다. '지금은 사정이 너무 나빠. 한두 해만이라도 돈을 벌어 생활의 근거를 만들어야 해' 이렇게 변명하면서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야만행위를 방관하는 내가 부끄럽다. 남에게 콩팥을 떼어주고 골수를 뽑아주는 장기기증자와 장애인의 손발이 되어 봉사하는 수많은 이웃을 보면서도 그 용기와 희생정신을 따라 배우고 실천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갈수록 부끄러움이 커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느끼는 슬픔과 노여움을 제대로 터뜨리지 않는 탓이리라. 이제는 얻어터지고 쫓기고 감옥에 갈 만큼 뚜렷한 '반체제적 소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과 노여움과 부끄러움이 내 삶의 활기를 지탱하는 세 기둥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반세기 만의 정권교체가 준 희망과 기대가 실망과 환멸로 바뀐 이즈음, 나는 슬픔과 노여움의 부름에 더 충실히 응할 때가 왔음을 예감하면서, 이럴 때 힘이 되는 맹자의 말씀을 되뇌어본다. '무수오지심비인야(無羞惡之心非人也)'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p.s 그래서 그래서 노무현대통령님과 유시민장관... 두 분은 통했나 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고 소리치시던 노무현대통령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ㅠ.ㅠ
온갖 행태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한 점의 티도 부끄러워서 몸들 바를 모르던 분들....
혹여 옛날 맞고 살던 놈들이 요즘 안맞으니까 다시 그 시절이 그리워서 몸이 근질근질한가
무슨 썩어 빠질 노예근성인가
아직도 지역의 올가미에서, 이념의 멍에에 속박받으려는가
이제 얼마나 '국민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에 속지 말아야 한다.
나부터, 내 주위부터, 하나하나 알아가자. 더이상 속지말자.
정치란 결국 백성 즉 국민을 편하게 모시는 것.............
국민과의 소통 부재,
북한과는 관계단절 편도행 기관차
우이독경이지만 마지막으로
현정부에게 묻는다.
당신께서 원칙과 소신으로
당연히 떨어질 줄 알며서도 지역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모습은
'바보'였습니다.
그 '바보' 사랑한 사람들이
당신의 뒤를 따랐고....
대통령이 되시고...
흔들어대는 온갖 잡배들...
수구 친일 매국집단들...
잘 견디시고
봉하로 돌아와
사람이 다시 돌아와 사는 농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발 끝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촛불을 켜고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도 보았습니다.
거짓말이라고, 이건 꿈일거라고...
그러나
내일 ....
내일이면 ....
눈물을 삼키며 보내드려야만 합니다.
님을 보내야만 합니다.
이제
바보같은 당신을 놓아 드려야 하네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대통령
내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오늘,
블로그 바탕화면을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오늘 아침 제 아이와
조기를 게양했습니다.
끝에 노란 리본도 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에
당신께서 남기신 뜻을 품고
이제 행동으로 나서려는 의지도 매달았습니다.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서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 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흘리며 나타난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스러워 보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통해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만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 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우며 번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
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어제 밤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에 서서......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서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 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흘리며 나타난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스러워 보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통해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만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 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우며 번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
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어제 밤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에 서서......
00시 버스터미널 옆 한일다방은 자유당때부터 있었다.
오래되어 흉물스럽지만 나이든 버스기사들한테는 이곳만한 곳이 없다.
카페나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면서 다방은 산업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장사가 점점 힘들게 되자 마담언뉘는 레지들을 향해 연실 도끼눈을 날렸다.
레지들은 이 짬밥에 영감들이나 꼬드겨 매상올려야 하냐며 투덜 거리면서도
지나는 행인들 중 수컷이란 수컷들한테 예의 그 처진 엉덩이 한짝을 들이대며
커피를 강요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마담 한나라씨는 레지 삼총사를 밀실로 불러 종종 대책회의 하는게 일과였다.
조양, 중양, 동양 이들 세 미녀들이 그나마 손님들을 몰고 오는 편이어서
한일다방 꽃미녀 삼총사로 알려졌다(한양, 경양은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손님들이 거의 없음).
하지만 회의 결말은 언제나 버스기사 노기사에 대한 성토로 끝이 났다.
다방영업이 형편없는 이유는 다 노씨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인데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아리랑 운수 베테랑 버스기사 노무현씨는 근면성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승객들도 안전운행과 친절이 몸에 베인 그를 좋아라했다.
버스안에서 뭐라도 먹을라 치면 꼭 기사님 몫이 있을 정도로.
이런 그가 한일다방 패밀리한테 단단히 찍혔는데.....
첫째는 그가 한일다방을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
그는 늘 대합실안에 있는 자판기만 이용하였다.
아무리 커피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레지 삼총사가 스커트를 바짝 올려 봐도
가슴에 뽕을 겹으로 넣어 봐도 다~ 소용이 없었다.
둘째는 그가 버스 승객들한테 한일다방이 비위생적이라고 떠들어댔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리랑 운수의 몇몇 기사들이 회사의 총애를 받는 그를 시기하여 만들어낸 거짓이었다.
셋째는 그에게 쪽팔림을 당한일.
마담 한나라씨와 그녀들이 목욕탕에 다녀오다가 터미널 앞에서 세차후 담배를 피던
노무현 기사님을 보고 커피한잔 공짜로 주겠다며 다시한번 꼬드기는 일이 있었다.
이때 노기사님이 그녀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맨얼굴을 첨 보았기 때문이었다
-노기사님 안녕하시지예~^^
=누구십니껴?
-우린 하닐다방 미녀들 아입니껴~^^
=우끼지 마이소 이래 몬생기가꼬 무슨 하닐다방 미녀들....지...진짭니껴 헉!
화장빨이 가신 그녀들의 진짜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노기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럴 수가! 그 동안 자신과 사람들은 철저히 속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발적이었지만 마담 한나라씨와 조.중.동 양들은 그 일을 뼈아픈 실수로 여겼다.
넷째는 한일다방이 불법영업행위와 탈세등으로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당국에 신고를 한 사람이 아리랑 운수 노조원이란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노조는 노무현기사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만든 조직이었다.
여러모로 한일다방과 노무현기사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를 수록 옛날이 그리워지는 법.
박정희 기사, 전두환기사, 노태우 기사....이런 기사님들이 한번 왔다가면
한일다방 매출이 몇배로 뛰던 호시절이 있었다.
늘 배달이 밀렸고 티켓으로 명품을 주워담았던 때였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조양과 동양이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법.
언제나 그렇듯이
장사가 안되는 건 다 싸가지 없는 노씨 때문이라는 삐뚤어진 현실로 돌아와서 문제지만.
노무현 기사만 떠올리면 한일다방 패밀리는 흥분과 경기를 일으켰다.
그녀들에게 있어 최고의 흥분제는 노기사의 말 한마디면 족했다.
그의 말은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상관없이
한일다방 그녀들의 성감대를 건드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버스 기사를 때려치고 시골로 농사지으러 갔을 때 한일다방 그녀들은 실연당한 모습이었다.
1년 몇개월 후 노무현 기사가 버스정비업체로 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시작하자
한일다방 그녀들은 다시 하악하악 거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너는 내 운명이야... 하악하악
-날 떠나지 마...하악하악
이번에는 한양과 경양도 그 대열에 끼었다. 볼 수록 가관이었다.
그녀들을 사사건건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하는 이,
정녕 사나이 노무현 뿐이란 말인가 !!!
한일다방이 인기 없는 이유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만 이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00시 버스터미널 옆 한일다방은 자유당때부터 있었다.
오래되어 흉물스럽지만 나이든 버스기사들한테는 이곳만한 곳이 없다.
카페나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면서 다방은 산업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장사가 점점 힘들게 되자 마담언뉘는 레지들을 향해 연실 도끼눈을 날렸다.
레지들은 이 짬밥에 영감들이나 꼬드겨 매상올려야 하냐며 투덜 거리면서도
지나는 행인들 중 수컷이란 수컷들한테 예의 그 처진 엉덩이 한짝을 들이대며
커피를 강요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마담 한나라씨는 레지 삼총사를 밀실로 불러 종종 대책회의 하는게 일과였다.
조양, 중양, 동양 이들 세 미녀들이 그나마 손님들을 몰고 오는 편이어서
한일다방 꽃미녀 삼총사로 알려졌다(한양, 경양은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손님들이 거의 없음).
하지만 회의 결말은 언제나 버스기사 노기사에 대한 성토로 끝이 났다.
다방영업이 형편없는 이유는 다 노씨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인데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아리랑 운수 베테랑 버스기사 노무현씨는 근면성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승객들도 안전운행과 친절이 몸에 베인 그를 좋아라했다.
버스안에서 뭐라도 먹을라 치면 꼭 기사님 몫이 있을 정도로.
이런 그가 한일다방 패밀리한테 단단히 찍혔는데.....
첫째는 그가 한일다방을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
그는 늘 대합실안에 있는 자판기만 이용하였다.
아무리 커피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레지 삼총사가 스커트를 바짝 올려 봐도
가슴에 뽕을 겹으로 넣어 봐도 다~ 소용이 없었다.
둘째는 그가 버스 승객들한테 한일다방이 비위생적이라고 떠들어댔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리랑 운수의 몇몇 기사들이 회사의 총애를 받는 그를 시기하여 만들어낸 거짓이었다.
셋째는 그에게 쪽팔림을 당한일.
마담 한나라씨와 그녀들이 목욕탕에 다녀오다가 터미널 앞에서 세차후 담배를 피던
노무현 기사님을 보고 커피한잔 공짜로 주겠다며 다시한번 꼬드기는 일이 있었다.
이때 노기사님이 그녀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맨얼굴을 첨 보았기 때문이었다
-노기사님 안녕하시지예~^^
=누구십니껴?
-우린 하닐다방 미녀들 아입니껴~^^
=우끼지 마이소 이래 몬생기가꼬 무슨 하닐다방 미녀들....지...진짭니껴 헉!
화장빨이 가신 그녀들의 진짜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노기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럴 수가! 그 동안 자신과 사람들은 철저히 속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발적이었지만 마담 한나라씨와 조.중.동 양들은 그 일을 뼈아픈 실수로 여겼다.
넷째는 한일다방이 불법영업행위와 탈세등으로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당국에 신고를 한 사람이 아리랑 운수 노조원이란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노조는 노무현기사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만든 조직이었다.
여러모로 한일다방과 노무현기사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를 수록 옛날이 그리워지는 법.
박정희 기사, 전두환기사, 노태우 기사....이런 기사님들이 한번 왔다가면
한일다방 매출이 몇배로 뛰던 호시절이 있었다.
늘 배달이 밀렸고 티켓으로 명품을 주워담았던 때였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조양과 동양이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법.
언제나 그렇듯이
장사가 안되는 건 다 싸가지 없는 노씨 때문이라는 삐뚤어진 현실로 돌아와서 문제지만.
노무현 기사만 떠올리면 한일다방 패밀리는 흥분과 경기를 일으켰다.
그녀들에게 있어 최고의 흥분제는 노기사의 말 한마디면 족했다.
그의 말은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상관없이
한일다방 그녀들의 성감대를 건드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버스 기사를 때려치고 시골로 농사지으러 갔을 때 한일다방 그녀들은 실연당한 모습이었다.
1년 몇개월 후 노무현 기사가 버스정비업체로 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시작하자
한일다방 그녀들은 다시 하악하악 거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너는 내 운명이야... 하악하악
-날 떠나지 마...하악하악
이번에는 한양과 경양도 그 대열에 끼었다. 볼 수록 가관이었다.
그녀들을 사사건건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하는 이,
정녕 사나이 노무현 뿐이란 말인가 !!!
한일다방이 인기 없는 이유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만 이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소년은 지렁이들이 무서운 마당가 토란밭에다가 쉬를 합니다.
밤새 이슬에 젖은 토란잎 위에서 오줌은 더운 진주 구슬이 되어
또르륵 구릅니다.
척척한 땅바닥에서 붉은 댕기 같은 지렁이들이 뜨겁다는 양
몸을 꾸물거립니다.
개숫물을 부으러 나온 누이가 소년의 꼭뒤를 콕 쥐어박습니다.
"지렁이가 고추 따 묵는다."
토란밭에서 일을 볼 때마다 소년의 할머니가 하던 말을
누이는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누이 저도 지난해까지 이 토란밭에다가 쉬를 했으면서 말입니다.
"작은 시엄씨!"
소년은 입을 날름거려 약을 올립니다.
희한하게도 다른 날 같으면 한 번 더 알밤을 줄 누이가
그대로 돌아섭니다.
밤새 배앓이를 한 누이는 수척해져 있습니다.
누이는 중학생이 된 뒤로 아주 어른 행세를 하려고 듭니다.
소년과 어우러져 목을 비틀고 씨름을 할 때가
오히려 누이다웠습니다,
지렁이를 발로 비벼 죽이던 그 짖궂은 가시내가
이제는 순 겁쟁이가 되어 지렁이 근처에는 얼씬도 못합니다.
선머슴아이처럼
"자, 내 알통 좀 봐"
하고 팔을 걷어붙이던 그 무쇠 솥뚜껑같이 단단하던 누이가
이제는 한 달이 멀다하고 시름시름 배앓이를 합니다.
아침 밥상을 물리자 누이는 조용히 소년을 불러 세웁니다.
그리고 쪽지를 손에 꼭 쥐어줍니다.
누이가 알려주지 않아도 소년은 무슨 심부름인 줄 압니다.
고개너머 읍내의 양품점에를 다녀오라는 것이지요.
누이가 배앓이를 할 때마다 하는 심부름입니다.
쪽지에는 소년이 모를 꼬부랑 영어가 쓰여 있지만,
소년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종이 기저귀지요.
처음 누이가 배앓이를 할 때
소년의 어머니는 빨랫줄에 하얀 기저귀를 널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했지만 누이는 창피한 눈치였습니다.
소년은 누이에게 오줌싸개라고 놀렸습니다.
괜히 놀린 모양입니다.
누이는 종이 기저귀로 바꾸고,
그 심부름은 소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누이의 심부름은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에 비하면
아주 쉬운 편입니다.
아버지는 '환희'라는 담배를 애용하는데, 아무래도
그 '환희'라는 낱말이 소년의 입에는 익지 않습니다.
'솔'이나 '거북선', '도라지' 같은 이름이라면
외우지 않아도 척 사올텐데,
'환희'는 입에서 굴리며 가지 않으면 까먹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동구에서 동네어른을 만나 꾸벅 인사를 하거나
고갯마루에서 꿩이라도 푸드득 날아가면 잊고 말지요.
그래서 아버지의 심부름은 늘 조마조마하답니다.
그런데 누이의 심부름은 아주 간단합니다.
양품점에 가서 쪽지를 내밀면 주인 아주머니는
"누나가 보냈구나?"
하고 딱 한 마디만 묻고 신문지에 그것을 정성스럽게 싸서
소년에게 들려줍니다.
참 신통합니다.
쪽지만 보고도 누구의 심부름인 줄 아니 말입니다.
읍으로 가는 고갯마루는 무서운 곳입니다.
예전에는 여우가 나타나곤 했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산신각이 있고 무당 집이 있고 그리고 폐병을 앓는
소년의 오촌당숙의 집이 있어 소년은 무섭답니다.
오촌당숙의 시렁에는 붉은 표지의 '삼국지'가
스무 권도 넘게 있답니다만, 가족은 없답니다.
당숙모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앓은 당숙은 이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뱀도 한 솥은 더 되게 삶아먹었고 땅에서 굼뱅이도 집어먹는답니다.
소년은 당숙의 집앞을 지날 때마다 겁이 납니다.
당숙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를 할 정도입니다.
오촌당숙의 집 울타리는 사철나무로 두르고 있습니다.
당숙이 아프기 전에는 소년은 그 집 아이들과 함께 동전처럼
둥근 사철나무의 이파리를 따서 기차타는 놀이를 했습니다.
"서울까지 데려가 주세요. 서른 장 내세요. 부산까지 데려가 주세요. 스무 장 내세요. 백두산까지 데려가 주세요. 거기는 못 갑니다. 빨갱이들이 지키고 있거든요. 달나라까지 데려다 주세요. 이백 장 주세요. 거기는 토끼들이 돈을 먹고산답니다...."
사철나무 울타리는 새순이 돋아 온통 비릿한 연둣빛입니다.
울타리에는 햇볕이 듬뿍 내려와 있습니다.
소년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볕이 당숙집 울타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괴물 같은 사람이 사는 집이 이토록 따뜻해 보일 수 있을까요?
어느 새 소년의 가슴엔 두려움은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가 스며듭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젖무덤 내음과 흡사한 비릿한 내음에 취해
그 집 사철나무 울타리 앞에서 심부름도 잊은 채 오랫동안 머무릅니다.
연둣빛은 소년의 몸에까지 스며든 듯합니다.
"애야!"
어디선가 불쑥 소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소년은 깜짝 놀랍니다.
그곳은 사철나무 울타리 옆 장독대입니다.
거멓게 마른 오촌당숙이 옹기에 등을 기댄 채
밥그릇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닙니까!
"어머니에게 밥 한 그릇만 얻어다 다오."
그이는 숨도 쉬기 버겁다는 듯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내놓습니다.
소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 지금 심 심부름 가요. 이따 다녀와서 갖다 드릴게요." "그러렴. 명심해다오."
오촌당숙은 삭정이 같은 팔을 거두어 밥그릇을 땅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소년은
"네"
하곤 한 달음에 고갯길로 내삡니다.
심부름을 다녀온 소년은 동무들과 소를 몰고 들로 나갔습니다.
삐리를 뽑아 씹으며 하늘을 나는 제비를 보며 맴을 돌았습니다.
해가 짧아 원망스러울 정도로 소년은 봄볕 속을 뛰어다녔습니다.
이튿날 아침. 오촌당숙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야
소년은 당숙이 내밀던 밥그릇을 떠올렸습니다.
오촌당숙의 연둣빛 울타리 너머에서는
울긋불긋한 꽃상여가 너울거렸습니다.
여전히 볕은 그 연둣빛에 머무르는데
더 이상 비릿하고 따뜻한 내음은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행여 자신의 몸에 남아 있을 그 연둣빛을 지워내려고
엉엉 울면서 바람도 없는 길을 뛰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문지를 똘똘 말아 화장실로 가던 누이가 깜짝 놀라워했습니다.
소년은 누이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누이의 품도 연둣빛 새순이 돋는지 비릿한 내음이 났습니다.
소년은 어른이 된대도 그 연둣빛이 가슴에서 쉬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지렁이들이 무서운 마당가 토란밭에다가 쉬를 합니다.
밤새 이슬에 젖은 토란잎 위에서 오줌은 더운 진주 구슬이 되어
또르륵 구릅니다.
척척한 땅바닥에서 붉은 댕기 같은 지렁이들이 뜨겁다는 양
몸을 꾸물거립니다.
개숫물을 부으러 나온 누이가 소년의 꼭뒤를 콕 쥐어박습니다.
"지렁이가 고추 따 묵는다."
토란밭에서 일을 볼 때마다 소년의 할머니가 하던 말을
누이는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누이 저도 지난해까지 이 토란밭에다가 쉬를 했으면서 말입니다.
"작은 시엄씨!"
소년은 입을 날름거려 약을 올립니다.
희한하게도 다른 날 같으면 한 번 더 알밤을 줄 누이가
그대로 돌아섭니다.
밤새 배앓이를 한 누이는 수척해져 있습니다.
누이는 중학생이 된 뒤로 아주 어른 행세를 하려고 듭니다.
소년과 어우러져 목을 비틀고 씨름을 할 때가
오히려 누이다웠습니다,
지렁이를 발로 비벼 죽이던 그 짖궂은 가시내가
이제는 순 겁쟁이가 되어 지렁이 근처에는 얼씬도 못합니다.
선머슴아이처럼
"자, 내 알통 좀 봐"
하고 팔을 걷어붙이던 그 무쇠 솥뚜껑같이 단단하던 누이가
이제는 한 달이 멀다하고 시름시름 배앓이를 합니다.
아침 밥상을 물리자 누이는 조용히 소년을 불러 세웁니다.
그리고 쪽지를 손에 꼭 쥐어줍니다.
누이가 알려주지 않아도 소년은 무슨 심부름인 줄 압니다.
고개너머 읍내의 양품점에를 다녀오라는 것이지요.
누이가 배앓이를 할 때마다 하는 심부름입니다.
쪽지에는 소년이 모를 꼬부랑 영어가 쓰여 있지만,
소년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종이 기저귀지요.
처음 누이가 배앓이를 할 때
소년의 어머니는 빨랫줄에 하얀 기저귀를 널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했지만 누이는 창피한 눈치였습니다.
소년은 누이에게 오줌싸개라고 놀렸습니다.
괜히 놀린 모양입니다.
누이는 종이 기저귀로 바꾸고,
그 심부름은 소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누이의 심부름은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에 비하면
아주 쉬운 편입니다.
아버지는 '환희'라는 담배를 애용하는데, 아무래도
그 '환희'라는 낱말이 소년의 입에는 익지 않습니다.
'솔'이나 '거북선', '도라지' 같은 이름이라면
외우지 않아도 척 사올텐데,
'환희'는 입에서 굴리며 가지 않으면 까먹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동구에서 동네어른을 만나 꾸벅 인사를 하거나
고갯마루에서 꿩이라도 푸드득 날아가면 잊고 말지요.
그래서 아버지의 심부름은 늘 조마조마하답니다.
그런데 누이의 심부름은 아주 간단합니다.
양품점에 가서 쪽지를 내밀면 주인 아주머니는
"누나가 보냈구나?"
하고 딱 한 마디만 묻고 신문지에 그것을 정성스럽게 싸서
소년에게 들려줍니다.
참 신통합니다.
쪽지만 보고도 누구의 심부름인 줄 아니 말입니다.
읍으로 가는 고갯마루는 무서운 곳입니다.
예전에는 여우가 나타나곤 했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산신각이 있고 무당 집이 있고 그리고 폐병을 앓는
소년의 오촌당숙의 집이 있어 소년은 무섭답니다.
오촌당숙의 시렁에는 붉은 표지의 '삼국지'가
스무 권도 넘게 있답니다만, 가족은 없답니다.
당숙모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앓은 당숙은 이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뱀도 한 솥은 더 되게 삶아먹었고 땅에서 굼뱅이도 집어먹는답니다.
소년은 당숙의 집앞을 지날 때마다 겁이 납니다.
당숙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를 할 정도입니다.
오촌당숙의 집 울타리는 사철나무로 두르고 있습니다.
당숙이 아프기 전에는 소년은 그 집 아이들과 함께 동전처럼
둥근 사철나무의 이파리를 따서 기차타는 놀이를 했습니다.
"서울까지 데려가 주세요. 서른 장 내세요. 부산까지 데려가 주세요. 스무 장 내세요. 백두산까지 데려가 주세요. 거기는 못 갑니다. 빨갱이들이 지키고 있거든요. 달나라까지 데려다 주세요. 이백 장 주세요. 거기는 토끼들이 돈을 먹고산답니다...."
사철나무 울타리는 새순이 돋아 온통 비릿한 연둣빛입니다.
울타리에는 햇볕이 듬뿍 내려와 있습니다.
소년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볕이 당숙집 울타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괴물 같은 사람이 사는 집이 이토록 따뜻해 보일 수 있을까요?
어느 새 소년의 가슴엔 두려움은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가 스며듭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젖무덤 내음과 흡사한 비릿한 내음에 취해
그 집 사철나무 울타리 앞에서 심부름도 잊은 채 오랫동안 머무릅니다.
연둣빛은 소년의 몸에까지 스며든 듯합니다.
"애야!"
어디선가 불쑥 소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소년은 깜짝 놀랍니다.
그곳은 사철나무 울타리 옆 장독대입니다.
거멓게 마른 오촌당숙이 옹기에 등을 기댄 채
밥그릇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닙니까!
"어머니에게 밥 한 그릇만 얻어다 다오."
그이는 숨도 쉬기 버겁다는 듯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내놓습니다.
소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 지금 심 심부름 가요. 이따 다녀와서 갖다 드릴게요." "그러렴. 명심해다오."
오촌당숙은 삭정이 같은 팔을 거두어 밥그릇을 땅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소년은
"네"
하곤 한 달음에 고갯길로 내삡니다.
심부름을 다녀온 소년은 동무들과 소를 몰고 들로 나갔습니다.
삐리를 뽑아 씹으며 하늘을 나는 제비를 보며 맴을 돌았습니다.
해가 짧아 원망스러울 정도로 소년은 봄볕 속을 뛰어다녔습니다.
이튿날 아침. 오촌당숙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야
소년은 당숙이 내밀던 밥그릇을 떠올렸습니다.
오촌당숙의 연둣빛 울타리 너머에서는
울긋불긋한 꽃상여가 너울거렸습니다.
여전히 볕은 그 연둣빛에 머무르는데
더 이상 비릿하고 따뜻한 내음은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행여 자신의 몸에 남아 있을 그 연둣빛을 지워내려고
엉엉 울면서 바람도 없는 길을 뛰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문지를 똘똘 말아 화장실로 가던 누이가 깜짝 놀라워했습니다.
소년은 누이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누이의 품도 연둣빛 새순이 돋는지 비릿한 내음이 났습니다.
소년은 어른이 된대도 그 연둣빛이 가슴에서 쉬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윤의사 의거(1932년) 당시 장남 종(淙)은 세 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 둘째 담은 두살 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 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 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 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해오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73)씨. 김씨는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 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 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35)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으며, 97년에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다. 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필자 윤주영씨는 셋째딸이다.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윤의사 의거(1932년) 당시 장남 종(淙)은 세 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 둘째 담은 두살 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 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 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 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해오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73)씨. 김씨는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 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 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35)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으며, 97년에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다. 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필자 윤주영씨는 셋째딸이다.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 미안하게 생각도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 글을 쓰신 분은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 노래 모음
모음곡 01.아버지 ㅡ 김동아ㅣ 02. 아버지 ㅡ 윤상모ㅣ 03. 아버지 ㅡ이화ㅣ 04.아버지 ㅡ 김수지ㅣ 05. 아버지 ㅡ 김향미ㅣ 06. 아버지 ㅡ 권태수ㅣ 07. 아버지 ㅡ 이성호ㅣ 08. 아버지 ㅡ 박윤경ㅣ 09. 아버지 ㅡ 방주연ㅣ 10. 아버지 ㅡ 버블씨스터즈ㅣ 11. 아버지 ㅡ 김경호ㅣ 12. 아버지 ㅡ 서영은ㅣ 13. 아버지 ㅡ 자화상ㅣ 14. 아버지 ㅡ 권진원ㅣ 15. 아버지 ㅡ김국환ㅣ 16. 아버지 ㅡ 유니ㅣ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 미안하게 생각도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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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래 모음
모음곡 01.아버지 ㅡ 김동아ㅣ 02. 아버지 ㅡ 윤상모ㅣ 03. 아버지 ㅡ이화ㅣ 04.아버지 ㅡ 김수지ㅣ 05. 아버지 ㅡ 김향미ㅣ 06. 아버지 ㅡ 권태수ㅣ 07. 아버지 ㅡ 이성호ㅣ 08. 아버지 ㅡ 박윤경ㅣ 09. 아버지 ㅡ 방주연ㅣ 10. 아버지 ㅡ 버블씨스터즈ㅣ 11. 아버지 ㅡ 김경호ㅣ 12. 아버지 ㅡ 서영은ㅣ 13. 아버지 ㅡ 자화상ㅣ 14. 아버지 ㅡ 권진원ㅣ 15. 아버지 ㅡ김국환ㅣ 16. 아버지 ㅡ 유니ㅣ
지구별을 지켜보던 마음별 꼬마천사는 슬펐다. "사람들은 왜 항상 바쁘게 살지? 왜 자꾸 서로 다툴까? 저렇게 아름다운 별에서 무엇이 아쉬운 건데?" 꼬마천사의 눈에 지구별 사람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사람들은 이유없이 짜증내며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홀로 놀고 홀로 일하는 데 익숙했다.
꼬마천사는 지구별에 가기로 했다. 하트풍선 하나를 들고. 지구별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다. 꼬마천사는 지구별에서 친구가 없어 슬퍼하는 소년, 왜 전쟁을 하는지도 모르고 총을 쏘고 있는 군인, 학생들에게 성공을 위해 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님 등을 차례로 만난다. 그리고 "네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넌 정말 최고야" "성공해야 남들이 알아준다고요? 행복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용기를 낭비하지마. 마음의 소리를 들어"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잠깐 쏟아지는 눈만으로도 동심은 행복하다. 사진은 올 겨울 첫눈이 내렸을 때 부산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 국
꼬마천사가 마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가 없고, 무언가에 쫓긴다. 지쳐가던 꼬마천사는 마음이 맞는 유일한 생물, 달팽이를 힘들게 만난다. 꼬마천사가 묻는다.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어. 왜 항상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지?" 달팽이는 느긋하게 대답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쫓아다니는 거야. 하지만 너무 빨리 달려서 행복을 지나쳐 버리지. 너무 서두르느라 얼마나 멋진 광경이 옆에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거든. 귓가에 스치는 바람, 파란 하늘, 짙은 초록색 나무, 풀잎 하나…." 이때 꼬마천사는 지구별에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맞아, 행복은 나도 모르는 새 찾아오는 거 같아.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이유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지. 행복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알아차리는 것'이거든.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걸."
지구 바깥에서 우리의 일상을 구경하는 이가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마음별 꼬마천사와 같은 느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지만, 너무 자주 목적을 잃는다. 그래서 자꾸만 성공과 명예, 권력을 목표로 산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엄마 품을 떠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생활을 잃고만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정신 없이 내달린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는 손으로 한 뼘, 정말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연상시키는 책은 행복에 대한 통찰을 담은 동화다. 안테나처럼 삐죽 올라온 한 올의 머리카락, 무표정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표정의 꼬마천사는 행복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사랑과 기쁨이라는 선물을 전한다.
마음별 꼬마천사가 줄기차게 말하는 행복의 진원지는 우리 마음에 있다. 꼬마천사가 속삭인다. "행복은 정말 어디에나 있어. 그저 눈을 크게 뜨기만 하면 된다고!"
[불행한 지구별 사람들 위한 마음별 꼬마천사의 조언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 쿠르트 회르텐후버 지음/코니 볼프 그림/이승은 옮김/꽃삽/7900원]
지구별을 지켜보던 마음별 꼬마천사는 슬펐다. "사람들은 왜 항상 바쁘게 살지? 왜 자꾸 서로 다툴까? 저렇게 아름다운 별에서 무엇이 아쉬운 건데?" 꼬마천사의 눈에 지구별 사람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사람들은 이유없이 짜증내며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홀로 놀고 홀로 일하는 데 익숙했다.
꼬마천사는 지구별에 가기로 했다. 하트풍선 하나를 들고. 지구별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다. 꼬마천사는 지구별에서 친구가 없어 슬퍼하는 소년, 왜 전쟁을 하는지도 모르고 총을 쏘고 있는 군인, 학생들에게 성공을 위해 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님 등을 차례로 만난다. 그리고 "네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넌 정말 최고야" "성공해야 남들이 알아준다고요? 행복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용기를 낭비하지마. 마음의 소리를 들어"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잠깐 쏟아지는 눈만으로도 동심은 행복하다. 사진은 올 겨울 첫눈이 내렸을 때 부산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 국
꼬마천사가 마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가 없고, 무언가에 쫓긴다. 지쳐가던 꼬마천사는 마음이 맞는 유일한 생물, 달팽이를 힘들게 만난다. 꼬마천사가 묻는다.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어. 왜 항상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지?" 달팽이는 느긋하게 대답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쫓아다니는 거야. 하지만 너무 빨리 달려서 행복을 지나쳐 버리지. 너무 서두르느라 얼마나 멋진 광경이 옆에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거든. 귓가에 스치는 바람, 파란 하늘, 짙은 초록색 나무, 풀잎 하나…." 이때 꼬마천사는 지구별에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맞아, 행복은 나도 모르는 새 찾아오는 거 같아.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이유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지. 행복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알아차리는 것'이거든.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걸."
지구 바깥에서 우리의 일상을 구경하는 이가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마음별 꼬마천사와 같은 느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지만, 너무 자주 목적을 잃는다. 그래서 자꾸만 성공과 명예, 권력을 목표로 산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엄마 품을 떠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생활을 잃고만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정신 없이 내달린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는 손으로 한 뼘, 정말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연상시키는 책은 행복에 대한 통찰을 담은 동화다. 안테나처럼 삐죽 올라온 한 올의 머리카락, 무표정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표정의 꼬마천사는 행복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사랑과 기쁨이라는 선물을 전한다.
마음별 꼬마천사가 줄기차게 말하는 행복의 진원지는 우리 마음에 있다. 꼬마천사가 속삭인다. "행복은 정말 어디에나 있어. 그저 눈을 크게 뜨기만 하면 된다고!"
[불행한 지구별 사람들 위한 마음별 꼬마천사의 조언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 쿠르트 회르텐후버 지음/코니 볼프 그림/이승은 옮김/꽃삽/7900원]
카네기멜론 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수로 랜디 포시 교수는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았으며, 가상 현실 분야의 최고전문가로 활발한 연구를 펼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더욱 가슴아픈 이유는 결혼한지 8년차로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고생해서 얻은 과실을 이제 누리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암 때문에 죽어야 한다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표정과 행동, 죽음을 앞두는 사람의 자포자기한 모습과는 전혀 반대였다.
말기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통해 미국인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 감동, 사랑을 선사해온 랜디 포쉬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2008년 7월 25일 숨을 거뒀다.
포쉬 교수는 버지니아 체사피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4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부인 제이와 어린 세자녀 딜런(6), 로건(3), 클로에(2)와의 고별이었다.
포쉬 교수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지난해 9월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정으로 성취하는 일'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이라는 주제로 '고별 강연'을 했다.
강연 주제가 어릴 적 꿈이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강연으로 유명해진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마지막 강연'을 할 때 나를 병(甁)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 병이 언제가 해변에 닿아 우리 애들에게 전해지길 소망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시한부 삶이 마감되면 들려줄 수 없는 얘기들을 모아서 자식들에게 남겨둔다는 의미로 강연을 했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강연 내용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같은 이름의 책까지 나오게 되자 "다른 사람들이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책은 나의 세 자녀를 위한 것"이라며 뜨거운 '부정(父情)'을 드러냈다.
포쉬 교수의 강연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고별 강연에 비친 그의 모습이 말기암 투병중인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강연은 지난해 12월 '마지막 강연'이라는 이름의 동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려진 후 입소문을 타면서 전 세계적으로 3백2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같은 이름으로 올해 4월 출간된 책은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다.
그는 또한 포쉬 교수의 얘기가 계속 화제가 되자 미국 ABC 방송은 지난 4월 그의 투병과 가족 이야기, 그가 성취하지 못한 어릴 적 꿈 등 주제로 한 특집물을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기도 했다.
포쉬 교수는 강연에서 유년시절의 꿈 가운데 '무중력 상태 경험하기', '백과사전에 글싣기', '월트 디즈니에서 일해보기' 등은 모두 성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가지 못해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프로풋볼(NFL)에서 뛰어보는 것이었다고 진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ABC방송의 특집에 출연하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계 풋볼스타인 하인스 워드와 캐치볼을 하면서 잠시 NFL 구장에서 뛰어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당시 방송에서 "나는 비록 암에 걸렸지만 그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화를 낸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며 긍정적인 태도로 병마와 싸워나가겠다는 의연함을 보였다.
그는 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세 단어가 있는데 그건 'to be honest(정직하라)'라며 거기에다 세 단어를 추가한다면 'all the time(언제나)'"이라고 말했다.
포쉬 교수의 어록은 이것 말고도 많다. "경험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완전히 악마인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의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하라. 참고 기다리면 그는 당신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줄 것이다", "벽이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과연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서라는 뜻으로 벽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 만큼 내가 침울하지 않게 보인다면 실망시켜 미안하다"는 등 음미하면 할수록 마음에 와 닿는 얘기들이 많다.
포쉬 교수의 부인 제이는 남편이 숨을 거둔 후 "그동안 사랑과 기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수 백만명에게 감사 말씀을 드린다. 제 남편은 세상의 부모들이 자식과의 관계 등 가장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한 뉴스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강연은 멋진 연설이었어요. 당신 가족을 위해 늘 기도할게요" "포쉬 교수처럼 비전을 가진 인물은 드물며, 더구나 그런 비전을 기꺼이 남들에게 나눠주는 인물은 더욱 드물다", "정치인들이 그의 10분의 1만이라도 됐다면", "당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 당신이 전해준 영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애도의 글이 넘쳤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수로 랜디 포시 교수는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았으며, 가상 현실 분야의 최고전문가로 활발한 연구를 펼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더욱 가슴아픈 이유는 결혼한지 8년차로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고생해서 얻은 과실을 이제 누리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암 때문에 죽어야 한다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표정과 행동, 죽음을 앞두는 사람의 자포자기한 모습과는 전혀 반대였다.
말기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통해 미국인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 감동, 사랑을 선사해온 랜디 포쉬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2008년 7월 25일 숨을 거뒀다.
포쉬 교수는 버지니아 체사피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4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부인 제이와 어린 세자녀 딜런(6), 로건(3), 클로에(2)와의 고별이었다.
포쉬 교수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지난해 9월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정으로 성취하는 일'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이라는 주제로 '고별 강연'을 했다.
강연 주제가 어릴 적 꿈이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강연으로 유명해진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마지막 강연'을 할 때 나를 병(甁)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 병이 언제가 해변에 닿아 우리 애들에게 전해지길 소망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시한부 삶이 마감되면 들려줄 수 없는 얘기들을 모아서 자식들에게 남겨둔다는 의미로 강연을 했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강연 내용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같은 이름의 책까지 나오게 되자 "다른 사람들이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책은 나의 세 자녀를 위한 것"이라며 뜨거운 '부정(父情)'을 드러냈다.
포쉬 교수의 강연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고별 강연에 비친 그의 모습이 말기암 투병중인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강연은 지난해 12월 '마지막 강연'이라는 이름의 동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려진 후 입소문을 타면서 전 세계적으로 3백2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같은 이름으로 올해 4월 출간된 책은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다.
그는 또한 포쉬 교수의 얘기가 계속 화제가 되자 미국 ABC 방송은 지난 4월 그의 투병과 가족 이야기, 그가 성취하지 못한 어릴 적 꿈 등 주제로 한 특집물을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기도 했다.
포쉬 교수는 강연에서 유년시절의 꿈 가운데 '무중력 상태 경험하기', '백과사전에 글싣기', '월트 디즈니에서 일해보기' 등은 모두 성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가지 못해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프로풋볼(NFL)에서 뛰어보는 것이었다고 진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ABC방송의 특집에 출연하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계 풋볼스타인 하인스 워드와 캐치볼을 하면서 잠시 NFL 구장에서 뛰어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당시 방송에서 "나는 비록 암에 걸렸지만 그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화를 낸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며 긍정적인 태도로 병마와 싸워나가겠다는 의연함을 보였다.
그는 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세 단어가 있는데 그건 'to be honest(정직하라)'라며 거기에다 세 단어를 추가한다면 'all the time(언제나)'"이라고 말했다.
포쉬 교수의 어록은 이것 말고도 많다. "경험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완전히 악마인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의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하라. 참고 기다리면 그는 당신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줄 것이다", "벽이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과연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서라는 뜻으로 벽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 만큼 내가 침울하지 않게 보인다면 실망시켜 미안하다"는 등 음미하면 할수록 마음에 와 닿는 얘기들이 많다.
포쉬 교수의 부인 제이는 남편이 숨을 거둔 후 "그동안 사랑과 기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수 백만명에게 감사 말씀을 드린다. 제 남편은 세상의 부모들이 자식과의 관계 등 가장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한 뉴스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강연은 멋진 연설이었어요. 당신 가족을 위해 늘 기도할게요" "포쉬 교수처럼 비전을 가진 인물은 드물며, 더구나 그런 비전을 기꺼이 남들에게 나눠주는 인물은 더욱 드물다", "정치인들이 그의 10분의 1만이라도 됐다면", "당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 당신이 전해준 영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애도의 글이 넘쳤다.
사알짝 들어 올린 이파리는 질기기도 하지 하늘빛 파스름한 속살이 보일듯 말듯 세찬 비바람도 아랑곳 없댄다
이슬망울 터트리는 수즙음은 있어도 보아 주는 이 없던 천대받던 질경이 너 뿌리까지 버릴 것 없다는 동의보감엔 百草안에 든 藥草라했었지
중년 여인네 오줌 소태두 남정네 전립선,인체의 항암제 역할도 한댔다
오솔길 외진 기슭에서도 갯바람이 이는 어촌 길 뚝에도 방방곡곡 산길 입구 논-밭 두렁에도
인간들이 외면했던 질경이 꽃 너를 이젠 쌈밥까지 해 먹어도 좋다는 걸 몰랐지
그 뉘가 질경이란 이름을 외우기나 했었나 수레바퀴에 짓밟혀도 질긴 생명으로 살아 남아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강한 너를 요즘 찾는 살람들이 부쩍 많아졌다지.
질경이, 차전자 (질경이 씨앗) 빼브쟁인의 어원은 조선시대의 명칭과 비슷합니다. 정식 명칭은 한방명은 차전, 씨를 차전자, 부이라고 하며, 질경이, 길짱구라고도 하지요.
질경이(Asian plantain)= 풀밭이나 길가, 또는 빈터에서 자란다. 줄기는 없고, 잎은 뿌리에서 뭉쳐 나오며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고 길이가 4∼15cm, 폭이 3∼8cm이며 5개의 나란히맥이 뚜렷하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몸과 길이가 비슷하고 밑 부분이 넓어져서 서로 얼싸안는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고 잎 사이에서 나온 길이 10∼50cm의 꽃줄기 윗부분에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빽빽이 달린다. 포는 좁은 달걀 모양이고 꽃받침보다 짧으며 대가 없다.
꽃받침은 4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이 둥글고 흰색의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다. 화관은 깔때기 모양이고 끝이 4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이고 화관 밖으로 길게 나오며, 암술은 1개이고, 씨방은 상위(上位)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꽃받침 길이의 2배이며 익으면 가운데 부분이 옆으로 갈라져 뚜껑처럼 열리고 6∼8개의 종자가 나온다. 종자는 길이가 2mm이고 검은 색이다. 어린잎은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잎을 차전(車前), 종자를 차전자(車前子)라는 약재로 쓰는데,차전자는 이뇨 작용이 있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간 기능을 활성화하여 어지럼증·두통에 효과가 있고, 폐열로 인한 해수에도 효과가 있다. 차전초는 이뇨 작용이 있어 신우신염·방광염·요로염에 사용한다.
아래는 본초강목과 의학입문의 내용을 인용한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질경이(길짱구)에 대한 설명은 모두 산객의 검색차을 두드리면 나온다.약재의 사용은 성질과 귀경을 알아서 쓰지 않으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므로전문인과 상의하면 더욱 좋다..
들판에 너무 흔한 질경이를 많이 볼수 있을 겁니다.
동의보감에두 나와 있지요.
항암제역할두 남자의 전립선에 최고라지요.여성들의 요실금에두요.
요즘은 어려서 더 좋은 질경이가 반찬상에두
캐다가 말려서 다려 먹던지. 가루를 내어 빚어 먹어두 좋답니다.
동의보감 백초주에 특효약이라..약초게시판
질경이는 들이나 길가에 나는 일년초이고, 질경이의 원줄기는 없고, 넓은 난형잎의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 밑동에서 총생한다. 질경이는 흰꽃이 피며, 꽃 줄기 끝에 다수가 이삭화서를 이루고, 방추형 열매인 차전자는 삭과동속식물로는 털질경이(P.depressa)와 왕질경이(P.japonica)등 우리나라에 5종이 자생한다. 질경이의 효능 =질경이는 설사, 이뇨, 거담, 소염, 해열, 지혈에 효능이 있다.
질경이의 식용 =질경이는 튀김, 나물, 겨자무침, 깨무침 등을 만들며, 구황식품이기도 하다. 질경이의 약용= 질경이의 잎, 줄기, 열매를 한방과 민간에서 열매(차전자)를 해열, 월경불순, 소염, 지사, 건위, 강장, 기침, 거담, 이뇨 등에, 축농증 또 전초 수침액은 위장병, 관절염, 위암, 임질에도 효과가 있다.
복용방법 =
각기:온포기 또는 씨 4~8g과 삽주뿌리 3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3~4일 간염 : 온포기 또는 뿌리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정도 감기 : 씨 6~8g을 1회분 기준,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2~3일 정도 강심제 :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4~5일 거담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5~6일. 고혈압 : 온포기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정도 . 곽란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2회 정도 복용. 관절염 : 씨 5~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정도 복용. 기침 : 온포기 또는 뿌리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4~5일 늑막염 : 온포기 또는 뿌리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 다래끼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4~5일딸꾹질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2~3회 신장결석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이상복용.안질 : 온포기 또는 씨 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3~4일 복용. 요도염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정도 요통 : 씨 또는 뿌리 8~10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이상 충치 : 온포기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3~4회 복용하면서 그 물을 5~6회 입에 오래 담고 있는다. 토사곽란 : 온포기 또는 씨 7~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3~4회 복용. 폐결핵 : 온포기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10 일 이상 복용한다. 혈변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4~5회 복용한다.
문헌에서 말하는 질경이=민간약초에서 천식에는 질경이 전체와 쑥을 2대 1의 비율로 배합하고 여기에 감초를 약간 추가하여 달인 후 차 대용으로 마시면 효과 있으며, 이는 임질에도 효과가 있다.
질경이를 이용한 먹거리 = 질경이차 , 질경이나물무침
*질경이탕 이용법*
여름철 꽃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질경이 몸체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잘게 썬 것을 이용한다. 1회분량으로 두세움큼을 자루에 넣어 삶은 후 그 물을 욕수에 섞어 목욕한다. 부스럼, 염증으로 피부가 부어오른 곳, 여드름, 이밖에 비염, 거담에도 효과가 있다. 질경이의 주요 성분=질경이에는 플라보노이드, 플라타긴, 호모플란타기닌,데닌, 콜린 등이 들어 있는데, 약리 실험 결과 기침을 멎게 하고, 소변이 잘 나가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배당체의 아우쿠민, 프라보노이드의 프란타기닌의 점액 다당류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뛰어난 소염 작용을 한다.
사알짝 들어 올린 이파리는 질기기도 하지 하늘빛 파스름한 속살이 보일듯 말듯 세찬 비바람도 아랑곳 없댄다
이슬망울 터트리는 수즙음은 있어도 보아 주는 이 없던 천대받던 질경이 너 뿌리까지 버릴 것 없다는 동의보감엔 百草안에 든 藥草라했었지
중년 여인네 오줌 소태두 남정네 전립선,인체의 항암제 역할도 한댔다
오솔길 외진 기슭에서도 갯바람이 이는 어촌 길 뚝에도 방방곡곡 산길 입구 논-밭 두렁에도
인간들이 외면했던 질경이 꽃 너를 이젠 쌈밥까지 해 먹어도 좋다는 걸 몰랐지
그 뉘가 질경이란 이름을 외우기나 했었나 수레바퀴에 짓밟혀도 질긴 생명으로 살아 남아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강한 너를 요즘 찾는 살람들이 부쩍 많아졌다지.
질경이, 차전자 (질경이 씨앗) 빼브쟁인의 어원은 조선시대의 명칭과 비슷합니다. 정식 명칭은 한방명은 차전, 씨를 차전자, 부이라고 하며, 질경이, 길짱구라고도 하지요.
질경이(Asian plantain)= 풀밭이나 길가, 또는 빈터에서 자란다. 줄기는 없고, 잎은 뿌리에서 뭉쳐 나오며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고 길이가 4∼15cm, 폭이 3∼8cm이며 5개의 나란히맥이 뚜렷하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몸과 길이가 비슷하고 밑 부분이 넓어져서 서로 얼싸안는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고 잎 사이에서 나온 길이 10∼50cm의 꽃줄기 윗부분에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빽빽이 달린다. 포는 좁은 달걀 모양이고 꽃받침보다 짧으며 대가 없다.
꽃받침은 4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이 둥글고 흰색의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다. 화관은 깔때기 모양이고 끝이 4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이고 화관 밖으로 길게 나오며, 암술은 1개이고, 씨방은 상위(上位)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꽃받침 길이의 2배이며 익으면 가운데 부분이 옆으로 갈라져 뚜껑처럼 열리고 6∼8개의 종자가 나온다. 종자는 길이가 2mm이고 검은 색이다. 어린잎은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잎을 차전(車前), 종자를 차전자(車前子)라는 약재로 쓰는데,차전자는 이뇨 작용이 있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간 기능을 활성화하여 어지럼증·두통에 효과가 있고, 폐열로 인한 해수에도 효과가 있다. 차전초는 이뇨 작용이 있어 신우신염·방광염·요로염에 사용한다.
아래는 본초강목과 의학입문의 내용을 인용한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질경이(길짱구)에 대한 설명은 모두 산객의 검색차을 두드리면 나온다.약재의 사용은 성질과 귀경을 알아서 쓰지 않으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므로전문인과 상의하면 더욱 좋다..
들판에 너무 흔한 질경이를 많이 볼수 있을 겁니다.
동의보감에두 나와 있지요.
항암제역할두 남자의 전립선에 최고라지요.여성들의 요실금에두요.
요즘은 어려서 더 좋은 질경이가 반찬상에두
캐다가 말려서 다려 먹던지. 가루를 내어 빚어 먹어두 좋답니다.
동의보감 백초주에 특효약이라..약초게시판
질경이는 들이나 길가에 나는 일년초이고, 질경이의 원줄기는 없고, 넓은 난형잎의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 밑동에서 총생한다. 질경이는 흰꽃이 피며, 꽃 줄기 끝에 다수가 이삭화서를 이루고, 방추형 열매인 차전자는 삭과동속식물로는 털질경이(P.depressa)와 왕질경이(P.japonica)등 우리나라에 5종이 자생한다. 질경이의 효능 =질경이는 설사, 이뇨, 거담, 소염, 해열, 지혈에 효능이 있다.
질경이의 식용 =질경이는 튀김, 나물, 겨자무침, 깨무침 등을 만들며, 구황식품이기도 하다. 질경이의 약용= 질경이의 잎, 줄기, 열매를 한방과 민간에서 열매(차전자)를 해열, 월경불순, 소염, 지사, 건위, 강장, 기침, 거담, 이뇨 등에, 축농증 또 전초 수침액은 위장병, 관절염, 위암, 임질에도 효과가 있다.
복용방법 =
각기:온포기 또는 씨 4~8g과 삽주뿌리 3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3~4일 간염 : 온포기 또는 뿌리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정도 감기 : 씨 6~8g을 1회분 기준,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2~3일 정도 강심제 :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4~5일 거담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5~6일. 고혈압 : 온포기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정도 . 곽란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2회 정도 복용. 관절염 : 씨 5~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정도 복용. 기침 : 온포기 또는 뿌리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4~5일 늑막염 : 온포기 또는 뿌리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 다래끼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4~5일딸꾹질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2~3회 신장결석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이상복용.안질 : 온포기 또는 씨 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3~4일 복용. 요도염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정도 요통 : 씨 또는 뿌리 8~10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이상 충치 : 온포기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3~4회 복용하면서 그 물을 5~6회 입에 오래 담고 있는다. 토사곽란 : 온포기 또는 씨 7~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3~4회 복용. 폐결핵 : 온포기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10 일 이상 복용한다. 혈변 : 온포기 또는 씨 6~8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4~5회 복용한다.
문헌에서 말하는 질경이=민간약초에서 천식에는 질경이 전체와 쑥을 2대 1의 비율로 배합하고 여기에 감초를 약간 추가하여 달인 후 차 대용으로 마시면 효과 있으며, 이는 임질에도 효과가 있다.
질경이를 이용한 먹거리 = 질경이차 , 질경이나물무침
*질경이탕 이용법*
여름철 꽃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질경이 몸체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잘게 썬 것을 이용한다. 1회분량으로 두세움큼을 자루에 넣어 삶은 후 그 물을 욕수에 섞어 목욕한다. 부스럼, 염증으로 피부가 부어오른 곳, 여드름, 이밖에 비염, 거담에도 효과가 있다. 질경이의 주요 성분=질경이에는 플라보노이드, 플라타긴, 호모플란타기닌,데닌, 콜린 등이 들어 있는데, 약리 실험 결과 기침을 멎게 하고, 소변이 잘 나가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배당체의 아우쿠민, 프라보노이드의 프란타기닌의 점액 다당류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뛰어난 소염 작용을 한다.
서경덕씨 그리고 가수 김장훈씨와(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동해와 독도광고, 국민이 후원해요
NYT에 실린 자랑스런 우리 독도광고! 광고가 계속 유지될수 있도록 국민여러분들이 후원해주세요!
전면광고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김장훈씨와 서경덕씨는 사비로 미국 일간지에 동해와 독도광고를 냈다고 해요!
기사 내용중 일부입니다.
서경덕 "김장훈과 손잡고 계속 광고 게재 등 활동"
9일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가 실렸다. 검은 바탕에 흰색 고딕체로 'DO YOU KNOW?(당신은 알고 계십니까)'라고 시작하는 광고는 동해와 독도가 표기된 지도와 함께 "지난 2000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로 불려 왔고, 동해에 위..
모금검토결과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은 지난 7월 10일 만 24시간이 되기 전 최단기간, 최대인원 참여, 최고금액 모금을 달성한 뉴욕타임즈 광고비 후원 희망모금을 모금 목표액 1억원으로 상향 조정하여 희망캠페인으로 확대 진행합니다. Daum은 희망캠페인을 통해 독도와 같은 우리 영토, 우리 역사 지키기에 네티즌이 폭넓게 참여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기존 모금된 3천 만원은 올 가을로 예정된 뉴욕타임즈 발해 고구려 광고에 후원되며, 다시 모금되는 금액은 서경덕님이 추진 중인 독도 광고 프로젝트에 후원할 예정입니다. 광고 제작과 진행 사항은 블로그를 통해 공유할 예정입니다.
*진행 근거: 공익성, 사회적 공감대 실현 *모금 효과: 독도 광고 프로젝트 후원 *모금액 전달: 서경덕 (www.forthenextgener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