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꽃배달 플라워365(flower365)
1년 365일 꽃배달 전문 온라인 서비스 / 24시간 고객센터 운영 / 회원가입시 5,000원 적립 / 상품구매시 5% 할인, 10%적립 / 적립금 5만원 이상 현금 교환 / 기업회원 별도 적립율 협의 / 전국 500여개 가맹 화원을 통한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배송 / 꽃바구니, 꽃다발, 축하화환, 근조화환, 동서양란, 화분, 분재 등 다양한 상품 구매 가능.
당시의 사고 개요 (미국 경찰청이 보관중인 당시 사고 기록임)
●사고발생 시간: 1977년 6월 16일 오후 1시 22분
●경찰 구조대(케워니시의 SHEFFIELD RESCUE) 도착시간: 1시 38분
●가해자
이름: 존로서(LEWIS. JR JOHN LOTHER, 35년 7월 27일생, 운전면허번호 261-50-1680)
주소: 아이오와주 데스모이니스(DES MOINES)시 501-7
직업: 아이오와주 포리스트 애비뉴 116에 주소를 둔 회사(TRANSOL CO.) 운전수
●가해차: 74년에 만들어진 대형트럭(CA213HP103431, 모델 FREIGHTLINER)
●피해차: 이휘소박사(35년 1월 1일생, 일리노이주 글린엘렌시 쉐필드레인 251)는 75년에 만들어진 다트(DART) 승용차를 몰다 변을 당했다.
이 박사 차는 운전석과 앞 트렁크가 완전히 부서져 복구비 2천 8백 달러에 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사고당시 동승자: 부인 마리안느(42세)와 아들 죠푸리(14세), 딸 아이렌(12세)이었다.
*이들은 당시 잠을 자고 있던 상태였으며, 사고후 이박사, 가해자와 함께 케워니 시립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은 당시 충돌의 순간이다.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가 있는 페르미연구소에서 서쪽으로 약 2백 Km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80번 고속도로. 길은 한산했지만, 안개가 끼고 노면이 젖어 있었다. 시속 88Km 속도로 달리던 대형 트럭이 갑자기 소리를 냈다. 그러나 운전사는 타이어 펑크를 알아채지 못했다.
차가 오른쪽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운전사는 바로잡으려 했고, 트럭은 다시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중앙분리대를 넘었고, 서쪽으로 달려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휘소는(달려오는 트럭을 피하려고) 최대한 오른쪽으로 피하려 했다고 동승한 죠푸리가 진술했다.(여기서 함께 동승했던 부인 마리안느는 바퀴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럭 바로 뒤에서 차를 몰았던 목격자 반리스는 이렇게 진술했다. (사고트럭은 머리부분인 견인차와 몸퉁부분인 부수차 두덩이었다.) 견인차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고 부수차는 왼쪽으로 틀어졌다. 트럭은 중앙분리대를 넘어갔다. 트럭은 승용차와 충돌하는 순간 왼쪽으로 꺾여졌다. 사고트럭 목격자의 차는 약 55마일 속도로 비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사고현장의 중앙 분리대
동행 2차선, 서행 2차선인 현장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는 양쪽 차선을 합한 것만한 4차선 정도(약 20미터)로 한가운데 깊이가 170Cm, 그곳으로부터 양쪽 차선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중앙분리대는 잔디와 잡초로 우거져 있다.
●사고현장에서의 특이점
첫째, 분리대를 넘기 시작한 지점과 충돌지점이 직선 21미터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왜 그렇게 큰 각도로 핸들을 꺾은 것일까?
둘째, 분리대가 20미터 정도 되는데도 왜 사고 대피지역인 분리대를 따라 달리다 멈추지 않고, 사고가 당연시되는 서쪽 차선으로 올라섰을까?
셋째, 서쪽 차선으로 넘어섰다 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길 가장자리로까지 피한 이박사 차와 충돌했을까? (최고깊이 170Cm의 중앙분리대를 넘는 과정에서 속도가 당연히 감소하였을 것이다.)
●사고현장에 관한 두가지 견해
●단순사고사
누군가가 살인을 음모했다면 그토록 '명중'이 어려운 곳을 선택했겠는가에서 출발한다. 즉 도로구조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승용차를 가늠해 살인하기엔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같은 차선의 뒤에서 혹은 다른 주택가나 간선도로에서 얼마든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텐데 성공률이 극히 적은 그곳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서로 맞은편에서 달리는데 길고 긴 고속도로에서 언제 어디에서 이박사 차가 다가오는지를 가해자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등이다.
●살인목적
누군가가 이박사를 살인할 목적을 가졌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대중적인' 교통사고로 가장 좋은 곳은 가장 의심받지 않는곳(성공률이 적어 보이는 곳)인데, 그 현장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또 사고현장과 약도를 볼 때 트럭운전수가 충분히 충돌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텐데, '기어이' 충돌한 점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운전중인 가해자가 이박사 차를 발견하는 것은 이박사를 추적해온 제 3의 인물로부터 무전등으로 충분히 정보제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 교통사고사에 대한 의문점
첫째, 박정희가 미국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핵개발과 관련한 도움을 받으려고 이박사와 비밀접촉, 귀국을 종용했으며, 이 박사도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둘째, 사고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즉 사고를 알린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일리노이주 남부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전부였고, 그후 누구도 상보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교통사고가 있었는가에서부터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미국 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가 4차선 정도나 되는데도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바퀴가 하나 빠WU 이박사 차 앞을 때렸다."(동승한 부인 마리안느의 주장-과학동아-91.6)
"바퀴가 빠진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 당했다."(78년 당시 최형섭 과기처 장관의 국회 답변)
는 등의 불확실하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들만이 오가고 있다.
●박순희(고 이휘소박사의 어머니) 여사와의 인터뷰 내용('말', 1993년 11월호)
-박대통령이 이박사의 아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이박사의 아들이 박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확인된 것입니다. 박대통령과 이박사 간에 직접 편지를 주고 받진 않았습니까?
"주고 받았지요"
-그 사실을 어머니께선 어떻게 알고 계신가요. 국가원수와 핵물리학자 간의 서신왕래는 극히 비밀스러웠을텐데요.?
"사고나기 1,2년전 이박사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속에 그가 박대통령에게 보낸 답신의 사본을 동봉했더군요. 편지지 2장으로 영어와 한글을 섞어 썼는데, 내용은 '지금은 아직 귀국할 단계가 아닙니다.'였지요. 나에게 '이 편지는 역사적인 것이니 어머니 혼자만 간직하시고 절대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사본을 아직 간직하고 계십니까?
"식구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내 책상서랍에 깊이 넣어 두었는데 이사다니면서 분실해 버려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비밀이 탄로날 위험이 있을텐데 왜 이 박사가 어머니에게 사본을 보냈을까요?
"그인 나에게만은 뭐든지 알려줬으니까요."
-그렇다면 한국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한 언질도 있었습니까?
"내가 물리에 대해선 문외한이니까 딱히 그에 대해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한가지 알 수 없는 대목이....." (약간의 부연을 붙이자면 이휘소박사가 동경대학에 강의하러 갔을 때 박여사는 동경에서 아들을 만났다 한다. 그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간 끝에 이박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이러는 거예요.
'어머니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애국잡니다.' 그말이 내 기억속에 아직 또렷한데,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이가 나에게 어떤 암시를 줬는데, 내가 모르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왜 그 말이 무슨말인지 추궁하지 않았는지 후회스럽습니다."
-사고 나기전에 이박사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까?
"73년 동경에서 만날 즈음엔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더군요. 내가 왜 가까운 곳까지 왔으면서 한국에 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갈 사정이 못된다'면서 나더러 동경으로 오라더군요. 74년 서울에 왔을때에도 호텔에서 자지 않고 미 8군 영내의 미 대사관저에서 잤습니다.
●강주상 교수의 '바퀴론'
이휘소 박사의 제자였던 고려대 강주상 교수는 이박사의 죽음과 관련 한가지의 판단과 두가지의 사실로 의문사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판단은 이 박사가 핵개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순수 이론물리학자였고, 박정희의 핵개발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핵개발을 도우려다가 죽었다는 주장은 틀리다는 것이다.
두가지 사실은 첫째는 박정희가 이 박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친서를 보낸 사실이 없음을 부인 마리안느를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고 직후 스스로 사고현장에 가본 한 목격자로서의 이런 증언이다.
"맞은 편에서 오는 대형트럭의 바퀴 한 개가 떨어져 나와 중앙 분리 잔디를 건너서 일행의 차를 덮쳤다. 이 바퀴는 앞 창 유리를 지탱하는 운전석쪽의 철제 창틀에 부딪쳤고, 창틀은 운전사인 이박사의 뇌를 강타하였다."
강주상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차량을 반대쪽 방향에서 비슷한 속도로 달려오면서 고의로 바퀴 한 개를 떨어져 나가게 하여 상대방 차를 어떻게 명중시킬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불순한 의도로 누가 일부러 일으킨 사건이라도 그 성공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결국 불행하고도 우연한 단순사고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 강주상 교수의 이런 주장은 당시 미국 경찰청이 보관중인 사고기록과 현저히 다르고, 편지 교신여부는 이박사의 어머니 증언이 결정적이다.
●이동원(박정희 시대 외무부장관과 국회 외무위원 역임)
이동원씨는 92년 10월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고려원)를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핵물리학자 이휘소박사의 교통사고가 박정희의 핵개발 강행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방해공작 사이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적었다.
다음은 1993년 6월 '말'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증거가 있나?
"단순사고 인지 살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게도 확실한 물증은 없다. 그러나 사고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나는 의문사쪽으로 생각한다."
-확실한 물증이 없다면 어떤 흔적이라도 있는가?
"흔적은 있다. 미국이 핵개발에 대해 상당한 압력을 가했는데도 박대통령은 핵개발을 위해 그 분야와 관련된 해외 한국인 학자들을 스카우트하는 공작을 했다. 이 공작에는 많은 자금이 동원됐는데, 원자력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분들도 다 그렇게 해서 들어왔다. 이박사는 그 분들보다도 더 박정희의 표적이 됐는데, 미국의 기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다."
-박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박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시 박정권 권부 깊숙한 부분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안들어도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
●1977년 6월 30일 국회경과위에서 신민당 고흥문의원의 제기 내용
당시 고흥문의원은 이박사의 사고기사를 보고 어떤 직감이 왔었다고 회고했다.
"이휘소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을 적에, 이박사가 노벨물리학상이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핵이론에 가장 귀중한 존재로 있었다는 점에서 본 위원은 여러 가지 지금 우리나라 사태로 보아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지 않느냐, 우리나라가 핵을 개발하게 될 경우 어쩌면 제일 먼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이박사가 아니냐, 여기에 어떤 흑막이 게재되어 있지 않느냐..."(국회 속기록 인용)
고 위원의 질문에 최형섭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의 답변은 "바퀴빠진 트레일러에 받쳐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 이외에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최장관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였다.
"이박사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이 날 만한 학자는 거의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사람들에 대해서 현지에서 무슨 보호를 한다든가 이러한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마는 저희들하고 긴밀한 연락을 해서 거기에 있으면서 저희들을 도와주는 사람과 또 한국에 나와서 저희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두 그룹으로 나뉘어 저희들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자력분야에 있어서도 여러 최신 지식의 축적과 공급에 비교적 긴밀한 연락 아래 피차간에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 속기록 인용-)
●1977년 7월 5일 '조선일보' 보도 내용
"....벤자민 리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상보가 없다..... 며칠전 국회에서 단순한 교통사고냐는 질문이 마침내 나왔다. 1968년 미국시민이 되었으나 4년전 고국을 다녀간 뒤부터 '이제부터는 조국을 위해서 일할때'라고 입
버릇처럼 되뇌이었으며 그가 내년 4월 귀국할 것으로 국내 학계에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소립자 이론이라지만 그것은 최근 연구 진척중이고 그가 도달한 이론에선 핵물리학 관리쯤은 이미 마스터한지 오래라는 것, 순수한 이론 물리학자였던 미국의 오펜하이머가 사실상 2차대전중 원폭제조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재미 2백 50명의 과학자들을 위해서라도 우발사고인지 분명해져야 한다."
●이휘소박사-박정희간의 교신
이휘소 박사의 유일한 제자이자, 고대 물리학과 강주상 교수는 "한가지 기억나느 바는 5년전 자녀들이 우표수집에 한창 취미가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박정희 대통령께 편지를 올려 한국우표를 선물로 받았고......" ('재미과학협회보' 제 6권 1호, 1977년 7월)
이러한 사실은 이박사가 서울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 "대통령이 어떻게 두 아이의 취미를 아셨는지 아들에겐 한국우표들을, 딸에겐 전통무용책을 선물로 주셨다."는 내용이 있다.
또다른 증언으로는 '소설 이휘소'의 저자인 공석하씨가 1986년 박근혜씨로부터 들었다는 진술이 있다.
"당시 성북동 집으로 찾아가서 평소 박대통령이 이휘소씨를 알고 지냈느냐고 물었지요. 대답은 '아버님은 이박사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메모록에 이박사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는 것이었어요." (박근혜씨가 소장하고 있는 '청와대 메모'는 언론에 일부가 보도된 '청와대 일기'와는 다른 것으로 박대통령이 자필로 그때그때의 생각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오원철(당시 제 2경제수석 비서관, 핵개발 2인자로 알려져 있음)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핵개발 사업의 책임자는 박대통령 스스로가 맡았고, 실무를 총괄 조정한 사람은 청와대 제 2 경제수석 비서관인 오원철씨였다. 오씨는 원래 경제기획원 관공차관 이었는데 박정희의 특명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다음은 오원철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1993년 6월 '말'지)
-70년대에 박대통령이 방위산업을 육성하면서 총괄 실무책임을 맡겼다는데.
"내가 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핵개발이 방위산업의 핵심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핵이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요새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의 핵개발이 문제되고 있는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국익에 반대된다."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알고 지냈나.
"난 모른다. 그런 사람, 전혀 모른다."
-핵개발이 한창때였던 70년대 중반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핵물리학자인데 방위산업 총책임자가 모른다면.
"아! 그분은 핵이론쪽이었다. 핵연료인 플루토늄, 우라늄보다도 더 작은 미립자, 소립자를 연구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박대통령과 이박사간에 어떤 접촉이 있었는가.
"난 모른다. 이건 노코멘트가 아니라 모르는 거다."
●이박사의 교통사고 3일 후인 77년 6월 19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미 CIA의 청와대 도청방법
"...70년 중반께 미국 관리들은 한국 국내 정치문제뿐 아니라 한국이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어떤 비밀거래를 할는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청와대를 전자도청할 장기계획을 세웠다. 여기엔 무선 전신전파방식이 사용됐는데, 도청의 대상이 되는 방안에 사전에 어떤 장치를 할 필요가 없었다. 무선전파를 그 방쪽으로 비춰 서서히 이동시키면 진동하는 소리나 잡음에 부딪칠 경우 그것을 포착, 그대로 송신신키는 것이다. 이 전파는 전파 발사장소와 도청대상간에 장애물이 있어도 관계없으며, 벽과 유리를 통과한다......"
●"청와대에서 있었던 핵개발에 대한 논의내용을 미국측이 우리 정부측에 들이대면서 핵개발 포기를 종용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도청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알아냈겠습니까."(1992. 4. '월간조선' -박정희의 큰딸 박근혜씨의 증언 내용중)
●카터의 주한미군 철군정책은 3단계로 나뉜다. 즉 구상기(74.12 - 77.3), 결정기(77.3 - 78.4), 수정폐기기(78. 4 - 80)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구분이 박정희가 핵개발을 구상, 결정하고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면서 그것을 폐기하는 3단계와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핵개발 의사
1975년 6월 12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박정희는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지금을 개발을 하고 있지 않다. 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걷어가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
●1977년 5월 17일 '뉴욕타임즈'
"포드재단의 최근 연구보고서는 한국이 핵탄제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이에 대응하여 핵확산방지를 위해 카터 대통령이 집중적인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1977년 5월 22일 박정희가 청와대 공보비서관 선우련씨에게 한 말,
"이번에 하바브(미국무차관)가 오면 핵을 가져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을텐데 가져 가겠다면 가져 가라지, 그들이 철수하고 나면 우리가 개발할 생각이오."
●1977년 6월 10일 미하원 외교위 비밀청문회
하비브 국무차관과 브라운 합참의장은 한국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도 지상군과 함께 4-5년 안에 철수할 것이라고 철군정책을 재차 확인했다. 이 비공개회의에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갖출 능력이 있는가의 여부에 대한 논의가 주의제였다. 미국이 무길르 철수하면 한국은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박동진 외무부장관 발언에 대한 진의와 농도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이휘소가 사고를 당할 당시의 CIA 국장은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부시의 CIA에 대해 백악관과 국무성, 국방성 관리들은 '정치적 예언의 정확도'에 D학점을 줬지만, '고도로 기술적인 군사정보 능력'에 있어서는 A학점을 주었다.('타임', 75.6.20) 예나 지금이나 핵확산방지는 CIA의 3대 임무중 하나로 알려질 정도로 중대한 것이다.
그즈음 핵정보에 대한 CIA의 열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74년 3억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심해탐색선을 만들어 핵정보 수집에 나섰던 예는 그 열성을 잘 보여준다. CIA는 소련 핵잠수함이 68년 태평양에서 침몰, 바다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소련의 핵암호, 핵전략계획을 얻기위해 심해탐색선 글로마익스플로러를 극비리에 만들어 침몰 잠수함의 일부를 인양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의원들은 막대한 비밀경비에 대한 지적을 했다.
그리고 당시 CIA는 약 7백만명의 내외 사찰명단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미국내 사찰 대상자는 11만 5천명이었다. 또 CIA는 겉봉을 뜯지 않은 채 중요 사찰대상자의 우편물을 검사해 왔다. CIA가 만약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박정희-이휘소간 비밀교신 혹은 비밀간접접촉을 체크해 그 내용을 알아내고자 했다면 그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이 영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였던 2007년 6월 2일 ‘참평 포럼 특강’을 담은 영상이다.
영상 속에는 당시 대선을 앞둔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입에 담기도 불순하지만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말로 운을 띄웠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창조적인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부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경제를 살리겠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략이 없는 공허한 공약이다. 그냥 미사여구에 불가 하다”고 전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대운하는 단기간에 자금 회수 안 되고, 민사 유치한다지만 참여할 기업이 있을 리 없으니 하나 마나 한 싸움을 하고 있다”라며 국책 토목사업의 부당성을 꼬집었다.
이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역시 노스트라무현다운 예언이다.”, “완전 족집게다. 정확히 일치한다.”, “이래서 내가 이분을 잊을 수 없다.”는 등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봄바람 불고요 개나리 활짝 피면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기다리는 마음 꽃잎에 날려 보내면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기다리는 마음 이렇게 가슴 아픈걸 사랑은 왜 서로 할까요 목련꽃 하얀 마음 가득 담고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렇게 가슴에 눈물이 흐르네 목련꽃 하얀 마음처럼
흐르는 강물에 꽃잎을 띄워 보내면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하늘거리는 아지랑이따라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기다리는 마음 이렇게 가슴아픈걸 사랑은 왜 서로 할까요 목련꽃 하얀 마음 가득 담고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렇게 가슴에 눈물이 흐르네 목련꽃 하얀 마음처럼 이렇게 가슴에 눈물이 흐르네 목련꽃 하얀 마음처럼
LCD 모니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프리미엄 디자인에 TV 기능을 추가한 초고화질(풀HD) TV 겸용 모니터 ‘삼성 싱크마스터 P2770HD’로 디스플레이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TV 겸용 모니터 삼성 싱크마스터 P2770HD는 27인치(69cm)의 큰 화면을 제공해 책상 위의 모니터 역할 뿐 아니라 침대나 소파에서 편안하게 TV로 즐길 수는 것이 큰 특징이다. 모니터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은 물론, 안방과 서재용 세컨드 TV를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도 각광 받고 있다. 일반 TV와 비교해도 그다지 작다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 싱크마스터 P2770HD는 비디오와 오디오 단자를 하나로 통합한 HDMI 단자를 통해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와 손쉽게 연결이 가능하고, HD-DVD나 블루레이 등 HD급 화면의 콘텐츠 재생도 지원한다. P2770HD는 TV 튜너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로 TV수신카드를 장착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3W 출력의 스테레오 스피커와 돌비 디지털 버전, 버츄얼 서라운드 사운드 효과, 디지털 5.1 채널까지 지원해 풍부한 사운드로 보다 실감나는 영상을 구현해 모니터뿐 아니라 TV로도 손색이 없다.
16:9 화면비율과 풍부한 색감을 보여 주는 풀HD 화질은 영화 감상에도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5만대1의 동적 명암비와 2ms의 응답속도로 게임과 같은 빠른 화면을 볼 때에도 최상의 이미지를 즐길 수 있어 완벽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매력적인 컨버전스 '캠코더와 삼성 싱크마스터 특유의 ‘ToC(Touch of Color)’ 디자인을 적용한 세련된 디자인도 돋보인다. 크리스털 느낌이 나는 베젤(테두리)과 독특한 투명 스탠드 넥(목), 전원 부분을 살짝 손가락으로 터치하면 은은하게 불빛이 들어오는 깔끔한 전면부 등 크리스탈 공예품 같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한다
2007년 6월 미국에서 처음 소개된 아이폰이 진화를 거쳐 지난달 말 드디어 국내에도 선을 보였다. 아이폰은 예상과 달리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이폰의 장점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라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기만 하면 기존 휴대전화에서는 누릴 수 없던 풍부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있는 한국판 아이폰 앱스토어에는 현재 4만 개가 넘는 어플리케이션이 등록돼 있다. 이 중에는 무료 어플리케이션도 1만8000여 개에 달해 손품만 조금 팔면 아이폰을 100% 활용할 수 있다. DSC09638 by 잡다한것들
-한국판 앱스토어 4만개 중 1만8000개 무료 -아이폰 100% 활용하기 -주요 포털 지도 서비스 장착
-동영상 PC 없이도 재생 가능 -각종 어플리케이션 잇단 선봬
■휴대전화 속 GPS
국내 인터넷 기업이 내놓은 어플리케이션을 잘 이용하면 컴퓨터 없이 아이폰만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특히 GPS 기능이 있는 아이폰은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를 잘 활용하면 내비게이션에 못지않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미 다음과 네이버 등이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앱스토어에 등록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이폰에는 기본적으로 구글 지도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돼 있지만 한국의 지리정보를 보여주기엔 부족하다. 현재 포털 지도 서비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다음 지도 서비스의 인기가 아이폰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지도는 50㎝급 고해상도 항공사진인 '스카이뷰'를 비롯해 실시간으로 교통현황을 볼 수 있고 대중교통과 자동차 이동경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로드뷰' 서비스를 이용하면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주변 거리 사진을 360도 확인할 수 있고 아이폰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이 바뀌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심심풀이 어플리케이션 가득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은 한가한 시간에 활용하기에도 그만이다. 다음 'tv팟' 어플리케이션은 다음 tv팟에서 제공하는 모든 UCC를 검색하고 재생해 볼 수 있다.
토익이나 토플 같은 교육 동영상이나 운동법 등 다양한 동영상을 PC 없이 모두 재생해 볼 수 있다. 다음 '아이티스토리(Itistory)'는 아이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블로그 포스트로 올릴 수 있다. 실시간 블로그 작성뿐 아니라 오프라인 상태에서 블로그 포스트를 만들어 저장했다가 온라인 상태에서 포스팅할 수도 있다.
네오위즈에서 제공하는 '세이캐스트'는 세이클럽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개인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수백 개 개인방송을 통해 가요와 외국음악까지 골라 들을 수 있다. 쇼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도 있다. 대표적 오픈마켓인 G마켓은 아이폰 출시에 맞춰 어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
G마켓의 모든 상품을 실시간 검색하는 통합검색 기능이 제공되며 베스트셀러, 오늘만특가, e쿠폰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아이폰으로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트위터도 트윗뎃, 믹세로, 트위티 등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컴퓨터에서 이용하는 것보다 간편하게 할 수 있다.
국내판 트위터인 네이버 '미투데이'도 아이폰으로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네이버나 다음 등 각 포털 사이트의 주요 서비스를 즐겨찾기 형태로 홈 화면에 등록만 해두면 별도의 어플리케이션 없이도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KTH에서는 개인 맞춤형 재생목록을 제공하는 음악추천 어플리케이션 '뮤직오로라 3.0'을 내놓았고 어도비에서는 내장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편집할 수 있는 무료 포토샵 어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다음은 "다음은 이미 제공 중인 tv팟, 다음 지도를 비롯해 곧 선보일 통합커뮤니케이션 도구인 마이피플 등 아이폰에 최적화한 어플리케이션을 서비스할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16일 체계적 노후준비와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한 노후설계 전문사이트 ‘내연금’(http://csa.nps.or.kr)을 개편·오픈한다
기존의 노후설계 전문사이트인 ‘행복나래’를 ‘내연금’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체계적 노후 설계를 위한 정보 인프라도 새롭게 구축했다고 한다.
공단은 노후설계 전문사이트 “내연금”을 통해 다층소득보장 설계의 필요성을 안내하고, 누구나 국민연금을 기반으로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추가한 다층소득보장 설계 프로그램을 통하여 본인의 은퇴준비 상황을 점검하도록 하였다.
개편에 따라 이용자는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내역, 예상연금액 등을 직접 조회할 수 있고, 퇴직연금, 개인연금 준비 정도에 따른 시뮬레이션과 노후 재무설계를 통하여 본인 스스로 은퇴준비 상황을 미리 예측해 볼 수 있으며, 고객 스스로 가계 재무상태의 적정성, 생애목적자금별 준비상황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내연금’은 재무영역 외에 건강, 일, 여가, 주거, 대인관계 등 비재무적인 영역에서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여 균형잡힌 노후설계서비스(CSA : Consulting on Successful Aging)를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노화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처방법 등 비재무적 영역에 대한 콘텐츠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고, 관련 정보를 구축하는 데 있어 영역별 전문가의 자문을 통하거나, 32개 전문 기관과의 사회협약 체결 또는 정보연계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였다.
[넥슨 제공] ㈜넥슨(대표 서민, 강신철)은 오는 12월 16일 있을 신작 액션 RPG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영웅전)의 ‘프리미어 오픈’을 앞두고, 마이크로 사이트를 열며 다양한 신규 영상 및 이미지를 공개했다.
<영웅전> 마이크로 사이트에서는 각 캐릭터별 특징을 소개하는 영상 3종을 포함해, 향후 공개 예정인 여러 신규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는 신규 아트웍과 스크린샷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미공개 캐릭터인 마법사 ‘이비’가 주변의 중력을 변화시켜 적들을 제압하는 모습이나, 던전 내의 물체들을 끌어 모아 골렘을 생성하는 플레이 영상은 <마비노기 영웅전>만의 온라인 물리엔진을 십분 활용해 기존의 어떤 게임에서도 보지 못한 혁신적인 모습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또한 새롭게 공개된 이미지들을 통해 <마비노기> 시리즈 특유의 따스한 캠프 파이어 장면이나, 다양한 캐릭터 외형 등 새로워진 영웅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웅전>의 프리미어 오픈은 12월 16일부터 PC방 유저들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으로, 넥슨은 프리미어 오픈 한 달여 뒤인 1월 중순 경부터 참여 제한 없이 <영웅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그랜드 오픈’ 모드로 초기화 없이 전환할 계획이다.
<영웅전>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이은석 디렉터는 “PC방 대상의 프리미어 오픈을 앞두고 개발팀은 마지막 안정화 작업에 총력을 다 하고 있다”며, “<영웅전> 프리미어 오픈에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액션 리얼리티”의 정수를 표방하는 <마비노기 영웅전>은 ‘소스 엔진’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 액션 온라인 게임으로, 최상의 액션성과 하이엔드급의 비주얼을 제공하며 기존 온라인 게임에서 체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액션플레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