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운명이다' 자서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동영상

시사이야기|2010. 5. 14. 05:42
유시민 '운명이다' 자서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동영상

 



유시민 후보의 누님이신 국민누님 유시춘선생님


[출처]http://usimin.net/


오늘 날 울린 글

바람이 불면 당신이 오신줄 알겠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 바람이 서울 경기를 넘어 충천과 강원 경남과 호남까지
이 나라 방방곡곡, 구석구석까지 휩쓸고 지나갈줄 믿습니다!

정말 와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노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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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 새긴 그 이름 노무현

시사이야기|2010. 5. 8. 10:00

뼈에 새긴 그 이름 노무현
 

「뼈에 새긴 그 이름」 시,낭송: 이원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5.16 5.18 그리고 5.23.... 
그 어떤 날이 어떠하던 간에 논쟁은 거두절미하더라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오월는 참 파란 만장한 날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2004년 무렵이었던 같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주 드나드는 서점 한켠에서...
 그 한편의 시를 읽고 그 감동으로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시를 읽고 결코 그러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시를 아마 뼈에 새기고 있을만큼 골백번 읽고 읽었죠. 

5월 8일 추모콘서트가 있다는 [노하우]에서 글을 읽던 중....
낯익은 아니, 뼈에 새긴 그 시인님의 추모시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도 바보를 사랑한 분이었구나' 



이원규....
그에 대한 일면식도 자세한 이력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뼈에 새긴 그 이름' 그의 시를 접한 지  6년여만에
 그도 '뼈에 새긴 이름' 중에 
우리가 존경하는 '바보'가 있음을 알고야 말았다.


  2010/05/08 - 뼈에 새긴 이름 '노무현'을 추억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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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통령

시사이야기|2009. 9. 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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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제작한 노무현대통령 다큐멘터리

시사이야기|2009. 7. 19. 07:12
[시민제작 다큐멘터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 (2009.07)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추모 다큐멘터리가 나왔습니다. 48분짜리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이 그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기획, 제작, 편집하였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마련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추모영상이나 UCC(이용자제작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첫 ‘시민제작 다큐멘터리’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의 질과 완성도 역시 매우 뛰어납니다. 내레이션에는 전문 성우들이 참여했습니다.

 

“안하면 안된다” 보름간 합숙하며 기획


제작을 총괄한 이창희 씨(50세)는 대한문 시민분향소 운영에 참여했던 시민입니다. 최근 출판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데, 광고기획사에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현재 ‘참언론을 위한 모임’(참언모)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본은 그가 설립하는 출판사에 소속된 김우중씨(28세)가 썼습니다. 전문 구성작가한테 맡기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가 지망생’을 고용했다고 하지만, 열정 없이는 안 될 일입니다. 다큐멘터리 대본을 처음 써본 김씨. 대통령님 관련한 책을 3일 만에 8권을 독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본은 작가 혼자 완성한 게 아닙니다. ‘초보 작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종 자료를 직접 찾아다 주면서 대본 감수를 자처한 신정웅씨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릅니다. 신씨는 퇴근하는 대로 제작실로 달려왔습니다. 작가 옆에 바짝 앉아서 ‘노무현 스토리’를 얘기해주고, 대본을 수십 번씩 읽으면서 검토했습니다. 그런 그의 노고는 스태프 스크롤에 ‘기획’을 추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대본은 전체 수정만 8번을 거쳤습니다. 제작, 편집은 이훈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 맡았습니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담은 <146-73=스크린쿼터+한미FTA>을 비롯하여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빅파이, 한국영화산업 나눠먹기> <신자유주의의 도발들> <아펙기동대>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독립영화계의 ‘베테랑’입니다.


제작비는 현재 절반 정도는 충당이 됐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외상 거래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촛불집회 등에서 밥차 운영과 커피, 녹차, 간식 제공 등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유명한 ‘다인아빠’도 힘을 보탰습니다.



영어, 중국어 버전 제작.. 대통령님 뜻 세계로 알릴 터


이들은 대한문 시민분향소를 운영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안하면 안된다”는 의지로 서로를 북돋우며 제작실에서 아예 보름 정도 합숙을 했고,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강해지도록 했을까? 이창희씨는 “대통령님이 우리에게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몸을 던지신 것이라면 앞으로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많은 시민들과 이를 공유할 수 있게 영상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통령님 서거를 단순한 자살로 보지 않고 간접 살인, 포괄적 살인으로 봤다”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를 규명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애초 제목은 <누가 왜 노무현을 죽였는가>였습니다.


대통령님이 어떤 목표와 열정을 갖고,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시려 했는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좀더 쉽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제작팀. 이를 위해 한국어 버전말고도 영어, 중국어로 더빙하여 유투브 등을 통해 세계로 알릴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더 필요할 텐데, 마련할 방안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촛불집회도, 분향소도 우리 힘으로 운영했어요. 일부에서 걱정도 했지만 힘을 모으니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죠. 영어, 중국어 버전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뜻에 동참할 시민들이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이 소식이 전달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 <노무현의 미완성공화국> 다큐멘터리 해외버전 제작 관련한 내용은 ‘참언모’ 카페(http://cafe.daum.net/chamunmo)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퇴임 후 인터넷 닉네임도 우공이산의 우화에 당신의 의지를 담아 노공이산으로 하셨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시민의 힘을 강조하셨던 노무현대통령.....
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49재가 지난 지금도 이 다큐를 보고 당신의 뜻을 기리며 눈물 짓습니다.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님....
그 특유의 어투로 하시는 말씀이 지금 바로 옆에 계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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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노무현이라는 사람 동영상

시사이야기|2009. 7. 12. 04:56
MBC스페셜---"노무현이라는 사람"--동영상(09-07-10-49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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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2001가을 kbs 아침방송미공개분

시사이야기|2009. 7. 9. 09:23
노무현대통령 2001가을 kbs 아침방송미공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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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진보에게 전하는 노통의 메시지

시사이야기|2009. 6. 9. 13:47

 

노통을 그렇게 까대던 오마이가 요즘 오연호를 필두로 서거정국에 편성하여 찬양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노뼈'인 나로서야 원통하고 속상하다.

 

중요한 건 오마이가 인터뷰한 내용 중 노무현대통령님의 소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참 어렵죠, 그럴 때.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지지자들 가운데 상처받은 사람이) 뭐 한 사람 두 사람이겠어요? 다들 (노무현 대통령이) 나쁘다고 하니까 정말 지지자들이 헷갈리지 않겠어요? 아 (그땐 나도) 내가 이렇게밖에 못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근데 한 번 물어봅시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뭐가 틀렸어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이 승리했는데 이 일련의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봅니까, 우연한 것으로 봅니까? 2002년 대선에서 내가 승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야말로 우연적인 기적이라고 봅니까?"


"나는 그것이 우리의 당연한 승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야말로 일회적인 승리이지요, 의외의 승리."

 

그런 단정에 나는 조금 서운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정몽준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한 것도 있었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아들 병역비리 의혹'도 있었지만 가장 큰 승인은 시대의 흐름,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내가 2002년 대선에서 이긴 것은 이례적인 사건, 특수한 조건들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도 못 풀어갑니다."

 

 

"내가 계속 이야기하지만, 해서 이길 수 없는 싸움들이었습니다. 1997년에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이길 기회를 잡은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보수 후보의 낙마를 통해서였습니다. 말을 막 타고 달리다가, 어느 날 보수가 말에서 뚝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인제 후보가 등장하고 보수가 분열이 된 것입니다. 보수진영이 실수했기 때문에 김대중 후보는 이긴 거지요."

 

 

"2002년 내 승리는 나의 독특한 인생사 때문입니다. 나는 부산에서 입신해가지고, 호남의 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영·호남을 어느 정도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있었던 거지요. 청문회 스타라고 해서 인지도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집스러운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겹쳐져서 그때 바람을 만들어 낸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 승리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경우다 이거죠."

 

 

 

"내가 아니면 이 시기에 진행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가끔 내가 '이거 나 아니면 못 합니다' 이런 소리를 하기는 합니다. 어제도 어디 강연 가서 '노무현이니까 했지 다른 사람 못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한 일들은 역사적으로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것이지, 결국은 역사의 필연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옛날에는 지도자 한 사람의 노력이 역사를 바꾼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닙니다."

 

 

"다 밀어주지 않았느냐 하지만, 우리가 사실은 특수한 이벤트를 통해서 정권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취약성 같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고요. 진보진영이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아도 아직까지는 마이너입니다. 물적 토대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물리적 토대의 차이만큼 노무현(지지세력)과 반대편 진영의 물적 토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보수진영은) 인적 조직도 강합니다. 이념적 결속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도 큽니다. 자생적으로 어떤 이익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생기면 그것이 다시 감성적인 네트워크로 재결합·재조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초등학교 때를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 때 감성적으로 시작한 친구도 사회에 나와 이익을 같이하는 수준의 동료가 되면 다시 더욱 결합되고, 또 자연적 결합관계가 한 번 더 되면 결합도가 매우 강해지죠. 그런 것이 아주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죠."

 

 

"그런데 우리(진보진영)가 이념에 기반해 사람들을 결속하려 시도하면, 지역으로 갈라져 있어서 결속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념적 주제가 이슈가 안 됩니다, 지역주의 때문에 이슈 자체가 되질 않아요."

 

 

"우리가 (탄핵당했을 때처럼) 위기에 빠졌을 때, 죽어간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막 밀어주던 (진보) 언론들도 일상시에는 또 비판해대요. 물론 (언론이 기본적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것은) 할 수 없지요.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지를 않아요. 두 수 앞을 내려다보는 것도 없고, 즉자적이에요. '왜 저것을 했을까' 생각하는 것도 없고, 두 번 생각하는 수준이 안 됩니다. (진보적이라는) 한 신문은 어느 날부터 나를 비판해대는 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2007년 6월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 장면.
ⓒ 청와대브리핑
 

 

 

"어릴 때 우리 집에서 과수원을 했어요. 감나무도 키우고, 복숭아도 키웠는데, 열매가 많이 달리면 따냅니다, 솎아줍니다. 나무가 어릴 때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리면 죽어버립니다, 말라비틀어지거나. 그러니까 그렇게 솎아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는 진보진영이 "순진하다"고 했다.

 

"뭐 어쩔 도리가 없어요. 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좋은 세상이 바로 올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함, 막강한 권력의 파워들을 다 저쪽에서 가지고 있는데… 그 순진함."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이 수준 가지고 다음에도 정권을 잡겠다고 하는 게… 허망한 일이에요."

 

그러고 보니 서로 닮은 듯했다. 2002년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준 지지자들과 노무현 대통령은. 양쪽 다 서로, 지지하는 마음과 섭섭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지자와 진보진영의 과도한 요구, 순진함에 섭섭해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2002년 대선 승리를 가장 보람있는 일로 여기고 있었고, 그만큼 그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 지난번에 재임 중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열린우리당이 깨질 때"라고 했는데요, 진짜 대통령 하기 참 잘했다, 이런 것을 느낀 때는 언제였습니까?

 

"당선되었을 때입니다. 내가 당선이 안 되었더라면, 내가 그 시기에 패배했다고 가정해보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 자신의 승리도 있지만, 선거의 과정과 방법에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선 그 자체가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 당선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고 있느냐, 그 점이 큰 부담이죠. 내가 당선했을 때,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시민들의 역동적인 결집 이런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일 아쉬운 것은 그 사람들의 기대와 활력, 자신감 이런 것을 지금까지 유지 못 하고 온 것이 아니냐…."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승리한 것은 이례적인 사건, 특수한 조건들이 결합되어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무슨 밑천이 있었어요? ... (이번 2007년 대선은 우리 쪽에 어려워지고 있는데)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디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노 대통령은 그날뿐 아니라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간간이 그에 대한 답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대전제는 보수-진보세력간 물적 토대의 차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도 못 풀어갈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이후엔?

 

첫째, 조급주의를 버려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런 예를 들었다.

 

"내가 시장에서 천원을 벌어왔는데, 왜 2천 원 못 벌어 오냐고 뺨 때리는 일이 벌어져 왔어요. 자기는 시키면 500원도 못 벌어 올 거면서.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하소연할 수밖에. 내가 그날 장에 갔더니 난장판이고, 장이 다 무너져 가지고 판때기 놓을 데도 없었는데요, 그래서 1000원밖에 못 벌었는데요?"

 

둘째, 당장의 유·불리를 떠나,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대의 앞에 하나 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대선 직후에 치러질) 다음 국회의원 선거만 의식했기 때문에 대의를 가지고, 멀리 보고 하나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각자 자기들 살려고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거나 비판에 앞장섰다는 말일 것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 자신은 "(선거운동) 전 기간 동안 목에서 피가 나도록" 대의를 위해 홍보지원을 자청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권 전 기간 동안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모아놓고,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김대중 정권 억울하게 언론에 당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가치가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사고하자'며 정말 목에 피가 나도록 홍보하고 다녔어요. 그렇게 하면 이겨요. 그런데 비 온다고 밖에 안 나가고 바람 분다고 안 나가고 하면 이기겠습니까?"

 

"가장 큰 장애는 야당이 아닌 조중동"

 

셋째, 국민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역량, 특히 미디어 역량을 길러야 한다.

 

"나는 지난 5년간의 투쟁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야당이 아니고, 조중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이죠. 그럭저럭 정책은 했습니다만, 그러나 역사투쟁이랄까, 기세 싸움에 있어서 (조중동의 영향 때문에) 우리 세력의 사기를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공권력·정보(이데올로기)·돈, 이 3자가 결합해서 권력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유권자의 최종선택을 결정짓는 정보(이데올로기) 마당이 "결전의 장"이라면서 미디어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권자인 유권자들이 정보와 이데올로기를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움직이니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부분에서 약합니다. 그럼 어떻게 (진보언론이) 독자층을 넓혀갈 것이냐? 소비자의 성향을 바꾸지 않으면 주류가 될 수 없습니다. 독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비전·전략을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하고 훈련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넷째, 혼신의 힘을 다하자, 그래야 대중은 감동한다.

 

노 대통령은 "왜 2007년 대선에서는 진보진영 후보에게서 감동이 느껴지지 않다고 보느냐"고 물으면서 황산벌 전투에서 병사 수는 턱없이 적었어도 신라군에 결사항전한 "백제의 계백 장군 결사대처럼 모든 것을 걸고 싸우면 대중은 감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정치학 강의하면 100강 정도 할 수 있을 것"

 

나는 이날 인터뷰를 하기보다는 대통령으로부터 정치학 강의를 들은 셈이었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10분이고 20분이고 그렇게 '강의'를 했다. 그런데 그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정치학 교수 노무현'은 본인의 경험을 사례로 들어가며 열강을 했고, 다소 주관적인 해석도 있었지만 깊이 있는 분석을 했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은 그렇게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진보의 미래를 위해. 

 

- 퇴임 후에 정치학 특강을 한번 하시죠, 제가 미리 들어본 셈인데 수강생이 많이 몰릴 것 같습니다.

 

"아마 내가 하면 1시간짜리로 100강 정도 해야 할 겁니다. 아니 200강 정도 될까? 기회가 되면 한번 하고 싶어요."

 

그러나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정치학 특강을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됐다. '정치학 교수 노무현'은 강의노트를 인터뷰 대화록으로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숙제를 우리들에게 내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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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셨길래......

시사이야기|2009. 6. 4. 12:26















 

무지개는 비 온 뒤에 자주 목격이 되는 현상이지만
오색채운은 평생 볼까 말까한 과학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오색채운이 뜨는 것을  상서로운 현상으로 여겼고
불교에서는 지상에서 하늘로의 승화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불교

오색채운은 바른 수행을 한 구도자가 열반에 들 때 나타나는 상서로운 현상

성경책 구절에서도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창세기 9장 13절을 보면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대순진리교

[ 행록1장29절]
 부인은 이로부터 한결같이 정성을 드려 四十九일을 마치니 상제께서 친히 부엌에 들어가셔서 그 정성을 치하하시므로 부인은 정성의 부족을 송구히 여기니 상제께서 부인을 위로하고 그대의 성심이 신명에게 사무쳤으니 오색 채운이 달을 끼고있는 그 증거를 보라고 하셨도다.

 

 오색채운은 처음 본 것 같네요.

 

그것도 한 나라의 대통령 노제 하는 곳의 상공에 떠있다는 것은 과학적
확률로 봐도 기적인 듯.

 

그렇군요.... 오색채운....

 

 

댓글()

날 울려버린 만화

시사이야기|2009. 6. 4. 11:38
당신과 동시대를 살았다는것 만으로도 다할수 없는 영광입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죄송합니다...

분향.. 우리 모든 이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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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노무현대통령...그를 바라보는 시선들

시사이야기|2009. 5. 31. 09:17
사진도 말을 한다??

 위, 아래
 두 장의 사진......

 더보기에...국민의 심금을 울린 한명숙총리의 [조사] 글과 동영상..
어느 신문도 흉내낼 수 없는 경향신문의 1면...
같은 사진에 ....
주목되는 다른 시선...
너무나 대조적인 우리나라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노무현대통령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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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그를 바라보는 시선들

시사이야기|2009. 5. 31. 09:17
사진도 말을 한다??

 위, 아래
 두 장의 사진......

 더보기에...국민의 심금을 울린 한명숙총리의 [조사] 글과 동영상..
어느 신문도 흉내낼 수 없는 경향신문의 1면...
같은 사진에 ....
주목되는 다른 시선...
너무나 대조적인 우리나라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노무현대통령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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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謹弔 블로그에 노란 물결을~

문학이야기|2009. 5. 28. 09:43
이렇게 님을 보낼줄은 몰랐습니다.

당신께서 원칙과 소신으로
당연히 떨어질 줄 알며서도 지역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모습은
'바보'였습니다.

그 '바보' 사랑한 사람들이
당신의 뒤를 따랐고....
대통령이 되시고...

흔들어대는 온갖 잡배들...
수구 친일 매국집단들...
잘 견디시고
봉하로 돌아와
사람이 다시 돌아와 사는 농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발 끝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촛불을 켜고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도 보았습니다.
거짓말이라고, 이건 꿈일거라고...
그러나
내일 ....
내일이면 ....
눈물을 삼키며 보내드려야만 합니다.
님을 보내야만 합니다.


이제
바보같은 당신을 놓아 드려야 하네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대통령
내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오늘,
블로그 바탕화면을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오늘 아침 제 아이와
조기를 게양했습니다.
끝에 노란 리본도 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에
당신께서 남기신 뜻을 품고
이제 행동으로 나서려는 의지도 매달았습니다.




 
그대 잘가라 !! 꽃상여 타고 ...!그대 ...!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릅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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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謹弔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시사이야기|2009. 5. 25. 16:03


      그 분은 알고 계셨다.


      2003년 청와대 들어가시면서
      "1년 안에 죽어서 나올 수도 있다"고

      예언처럼 말씀하셨지. (문성근님한테 들은 말)
      과연 1년 안에 탄핵을 받으셨지.

      그러나 불꽃처럼 살아나셨지.
      광화문 거리 가득 메운 촛불 기운받아 살아나셨지.

      당당하게 살아서 청와대를 나오셨지.
      칼 든 자들 없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셨지.

      살아서 나온 것만도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지.

      그리고 퇴임 후 1년만에 살해당하시네.
      시골까지 쫓아온 칼든 자들에 의해 몸 놓으셨네.

      당신은 알고 계셨네.
      아웃사이더에서 인물이 나오면 어떻게 난도질 당하는지.

      도와주는 이 하나없고
      약간의 실수라도 있으면 '거봐 내가 뭐랬어' 하고 물어뜯는건

      한겨레나 조중동이나 다를 바 없지.
      배운 자나 못배운 자나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모두가 한 통속이 되어 물어 뜯네.
      가진 자는 무서워서 물어뜯고 못 가진 자는 질투해서 물어뜯네.

      "그래! 인생은 굵고 짧게, 치열하게."
      그 분 마지막 가르침이네.

      조기숙교수가 검철청 문 앞에서
      "사랑합니다"하고 외친 것은

      당신의 결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웃으면서 천상병과 둘이 막걸리 한잔 하고 계실 것이네.

      방법은 하나 뿐이네.
      우리가 역사의 기록자가 되는 것 뿐

      http://gujoron.com/xe/30576
 

댓글()

▶◀ 謹弔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시사이야기|2009. 5. 25. 16:03


      그 분은 알고 계셨다.


      2003년 청와대 들어가시면서
      "1년 안에 죽어서 나올 수도 있다"고

      예언처럼 말씀하셨지. (문성근님한테 들은 말)
      과연 1년 안에 탄핵을 받으셨지.

      그러나 불꽃처럼 살아나셨지.
      광화문 거리 가득 메운 촛불 기운받아 살아나셨지.

      당당하게 살아서 청와대를 나오셨지.
      칼 든 자들 없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셨지.

      살아서 나온 것만도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지.

      그리고 퇴임 후 1년만에 살해당하시네.
      시골까지 쫓아온 칼든 자들에 의해 몸 놓으셨네.

      당신은 알고 계셨네.
      아웃사이더에서 인물이 나오면 어떻게 난도질 당하는지.

      도와주는 이 하나없고
      약간의 실수라도 있으면 '거봐 내가 뭐랬어' 하고 물어뜯는건

      한겨레나 조중동이나 다를 바 없지.
      배운 자나 못배운 자나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모두가 한 통속이 되어 물어 뜯네.
      가진 자는 무서워서 물어뜯고 못 가진 자는 질투해서 물어뜯네.

      "그래! 인생은 굵고 짧게, 치열하게."
      그 분 마지막 가르침이네.

      조기숙교수가 검철청 문 앞에서
      "사랑합니다"하고 외친 것은

      당신의 결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웃으면서 천상병과 둘이 막걸리 한잔 하고 계실 것이네.

      방법은 하나 뿐이네.
      우리가 역사의 기록자가 되는 것 뿐

      http://gujoron.com/xe/30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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