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그 너머로 봐야 할 것

시사이야기|2009. 6. 3. 06:08

정토로 떠난 그의 뒤 전장에 남은 우리....
풀어야 할 숙제는 산 자들의 몫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러나 산 자는 그럴 수 없다. 목숨을 가진 자가 산새나 들토끼를 벗 삼지 않는 한 사람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살인자는 사죄하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부르짖다 경호원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온 것도, 조갑제 씨가 이를 두고 "나라와 유권자에게 침 뱉은 격"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떠난 이는 무적이다. 그러나 남은 자의 힘은 유한하다. 누구도 연인의 마음 속에 있는 첫사랑의 기억에 이길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이제 임기 내내 국민들이 가진 '노무현의 기억'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칼로도, 전경의 방패로도 막을 수 없다. 현실 선택에서의 무거움과 가벼움, 먼저 해야 할 일과 뒤로 미룰 일을 따지는 게 정치와 정책이지만 이 대통령은 선택의 순간마다 이미 추상의 세계로 넘어간 전직 대통령과 비교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누가 초래했느냐는 힐문에 이 정권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생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그는 화합과 용서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생에서의 우리는 새로운 반목과 갈등, 불화의 씨앗을 본다. 봉하마을에서는 흥분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 의해,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공권력에 의해 문상객들마저도 저지되지 않았는가. 그의 노제를 위해 활짝 열렸던 광장은 바로 그날밤 다시 불통과 충돌의 전장이 됐다. 고인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 했지만 그의 한을 풀어야 한다는 신원(伸寃)은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민주당은 어제 이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쇄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대검중앙수사부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고향의 사찰 정토원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괴로움, 두려움이 없고 청정함과 부처님의 말씀이 가득 찬 곳이 바로 정토(淨土)이다. 번뇌와 더러움에 가득 찬 이 세상을 떠나 청정한 저 세상을 구한다는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淨土)는 생을 접는 이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토는 십만억불국토 저 너머에 있다. 산 자는, 남은 자는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현실과 다시 직면하게 마련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지난 두 달간의 현실을 보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결코 길지 않은 그 두 달 동안 한 전직 대통령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순식간에 숭모의 대상으로 떠받들어졌다. "한때 그를 지지했지만 이제는…" 이라는 '전직' 지지자들의 '커밍아웃' 시리즈가 이어지더니 "나는 그를 몰랐지만 떠나고 나니…"라는 뒤늦은 회한이 인터넷의 방명록을 메우고 있다. 더 앞서 7년 전에는 광야의 불길처럼 번져가다가 몇 년 새 조롱의 대상까지 되면서 가물거리던 노무현의 바람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에 속았다"는 손가락질의 일부는 당연히 자신에게도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이다지도 빨리 손을 거두고 다시 손을 내미는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서 그는 더 외로웠을 것이다.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의 행간에서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읽혀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옛 바이킹족은 동료의 시신을 태운 배를 불화살로 쏘아 바다로 보내고는 포도주를 쌓아놓고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제의(祭儀)에는 축제의 성격이 있게 마련이다. 유명을 달리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산 자와 죽은 이의 고리를 그렇게라도 풀려고 했을 것이다. 산 자는 결국 죽은 이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울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물의 공양도, 한차례의 씻김굿도 이승의 돌 하나를 옮길 수 없는 법이다.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산 자의 몫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 앞에 숙연하지 않을 이는 없다. 그렇다고 생전 서민을 자처했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던 그를 우상의 탑 위에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시간이라는 저울 추에서 그의 공적과 과오도 제자리를 잡겠지만 아마도 먼 훗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의· 권위주의의 타파, 약자와 소수자의 보호는 그의 지지자든 반대자이든 모두에게 끊임없이 되새겨지고 추구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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