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설이 곧 위기다.
무디스, S&P, 피치 등 3대 신용평가 기관과 파이낸셜 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다우존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 등 외신 그리고 다우존스 등 외국증권회사 CEO들이 일제히 한국이 위험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위기의 진앙지는 어디인가. 한국에 대해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외국 일부? 아니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 모두 아니올시다다. 위기의 주범은 다름 아닌 정부. 정확히 말해서 강만수다.
강만수는 작년 연말부터 달러화를 펀딩 등을 통해 미리 확보하라는 각계의 꾸준한 제언을 무시했다. 그는 오히려 지나치게 많다는 입장을 취했다. 적정보유고를 1,400억 달러 정도나 초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취임 후 즉각 고환율 정책에 돌입했다.
당초 그가 환율을 얼마를 목표로 띄우려 했는지는 각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1,100-1,200원 사이가 아니었겠느냐는 추정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우리 외환시장은 항상 공급보다 수요가 초과하는 시장이라 작은 충격에도 크게 요동치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당시 국제 시장은 물밑에서 조용히 달러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점이다. 외국인의 끊임없는 주식 순매도도 그런 관점에서 지적됐으나 강만수는 이 역시 무시했다. 물론 강만수는 키코의 존재도 몰랐다.
이런 국제상황의 역학에 가장 밝았던 국내 세력은 역시 투신이었다. 정부의 약 고환율 정책이 환율의 대폭등을 불러 올 것이 명백히 추정되는 상태에서 달러 선취매에 나섰고 이는 증권사를 계열로 둔 재벌 수뇌부로 즉각 전달되어 시장이 달러 전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환율이 예상 밖의 폭등양상을 띠자 정부는 당황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만수는 또 오판을 했다. 일시적인 수급불균형이 일어난 것이라 본 것이다. 그래서 아까운 4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환율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강만수는 결국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관치로 회귀했다. 투신의 장내 달러 매수를 금지시키고, 수출기업에 달러를 시장에 내던질 것을 명령하고, 은행에는 해외자산을 매각할 것을 지시했다. 이것은 개발도상국 하에서도 비상상황에서나 취해질 만한 긴급조치들이다. 외신들은 이걸 이상징후로 파악하고 즉각 해외로 타전했다. 잠잠하던 한국이 위기상황으로 내몰리는 순간이었다.
애초, 강만수가 시장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무리한 고환율 정책만 취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둘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조용히 수습하려 애썼더라면 우리나라에는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수는 자기가 만든 위기를 자기 손으로 계속 키워나갔다.
위기여야 위기가 아니라, 위기설이 돌면 곧바로 위기가 오는 급박한 상황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그제서야 강만수는 위기는 아니지만 위기설이 돌만 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달러가 더 있어서 나쁠 것은 없겠구나' 라며 달러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각종 펀딩 시도가 무산되고 주요국들과의 스왑협상에서도 한국은 계속 제외되었다.
강만수는 정확히 이때부터 몸이 달기 시작했고 특유의 조급증과 신경질적 반응을 드러냈다. 이것은 외신과 신용평가기관, 외국계 금융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이 위기설에서 위기로 진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한국이 본격적인 외환위기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정부는 이것을 강력히 부정했다. 그러나 한국에 위기가 닥칠 경우 달러를 빌려줄 주체는 이미 아무도 없는 상태다.
게다가 달러가 나갈 사유는 많다. 먼저 단기외채의 만기도래다. 정부는 이 부분의 상당부분이 연장될 것이라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올시다'다. 세계 각국에 달러 전쟁이 벌어진 지 오래다. 따라서 상당 부분의 단기 외채가 만기 연장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 외채를 조달한 주체의 60%는 외국계 은행들이다. 이들은 더 이상의 달러를 본점에서 조달받지 못한 채 이미 시장에 푼 달러의 회수 지시를 받고 있다. 내 추측에 이것의 이행을 우리 정부가 교묘하게 막고 있는 것이 외국계 언론의 짜증을 불러 일으킨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본점마저도 정부의 공적자금으로 자본확충에 나선 마당에 신흥시장에서 굴릴 달러자산의 운신 폭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 은행들은 자체 능력으로 원화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상당히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은행채를 시장에서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이다. 국고채와 은행조달금리 사이의 갭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간신히 확보한 원화는 국제시장에서 통화스왑에 실패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추세를 보이는데다 심각한 불안정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대출의 장기전환이나, 장단기 신규대출도 점점 불가능해 지고 있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폭발 직전이다. 정부는 우리가 LTV 규제 등이 잘 되어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외국 전문가들은 시세 자체에 거품이 지나치므로 우리의 LTV는 이미 미국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환율 방어에만 400억 달러 이상 날아간 상황에서 악재는 겹치고 있다. 우리나라 증권사 들의 해외증권투자의 대규모 평가손 (올해 현재 약 500억 달러 정도의 주식평가손 중 상당액이 해외 투자분이다.), 경제가 어려움에도 100억 달러 이상 나고 있는 관광수지 적자, 그리고 외국인 100만 노동자가 해외로 매년 송금하는 수백억 달러에, 올해 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수지 적자까지….
이것들만 대충 합쳐도 GDP의 10%를 넘어선다.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3% 이상 수년간 반복되어야 위기가 도래한다는 정부의 설명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두 가지 더 큰 문제가 있다.
첫째 강만수가 우리 패를 자꾸 외부에 노출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의 가용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은 바닥났다고 본다. 정부가 막탕짓을 골라 하는 것을 외국은 이의 반증으로 본다. 따라서 바닥이 안 났다 한들 이러한 오해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또한, 우리가 가진 외화를 자꾸 한군데로 모으고 있다. 예컨대 외화는 정부만 가지고 잇는 것이 아니다. 삼성생명만 하더라도 120조 원의 자산 상당 부분을 달러로 운영하고 있고, 국민연금 등도 상당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외국 투기세력은 이 규모를 정확히는 모르기에 한국시장 공략에 주저하고 있었지만 정부가 자꾸만 이 규모를 노출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한국은행이 국민연금의 달러 100억 달러를 인수하기로 한 것은 호재가 아니라 악재다.
둘째는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금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 당장은 생명을 연장해 주는 모르핀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결국에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역할도 한다. 부동산 시장의 부실 폭발을 불러올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은 고통스럽더라도 부동산 거품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만수는 오히려 키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걸 외국인들은 한국시장에 더 이상 투자하기에는 위험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한국은 심각한 상황이다. 강만수는 작년 서브프라임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악의 실수만을 반복하고 있다.
위기설이 위기가 되는 심각한 상황을 인정치 않고, 위기의 대응수단과는 거꾸로 대처를 하고 있으며, 장래의 우군을 적으로 만들고 공격하는가 하면, 아직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물밑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달러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주요국들은 서로 무한대의 달러공급을 확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선진시장들끼리다. 게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채 자금 회수에 나서 시장을 배회하는 헤지 펀드들의 규모가 어마하다. 이들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시장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단기적 공략 의지가 강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제 장관을 자르더라도 위기는 수습될 거 같지 않다. 강만수가 위기를 너무 키워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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