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언행일치

시사이야기|2008. 11. 20. 05:17

지도자의 언행일치



참 대조적이다. 집부자들이 내는 세금인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는 정부 여당과 헌법재판관들의 전방위적 공세, 배우 문근영의 기부 소식 말이다. 오늘은 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통령께서 그 말을 안 했으면 모를까, 했으니까 여쭙고 싶은 게, 혹시 그럼 300억 원 재산 헌납발언도 선거용이었던가, 하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헌납을 하신다고는 했는데 취임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도 안 되고 있는 게 궁금하던 차에 대통령께서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는 발언을 하셨기에 묻는 것이다.

이십 대 초반의 한 여성 배우가 말없이 기부를 하는 동안 지금 종합부동산세 무력화를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 무엇을 기부했는지 묻고 싶다. 문근영 씨의 '기부미담'이 전해지자 또 한쪽에서는 '문근영 악플'이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문근영의 외할아버지가 '좌빨'이라서 문근영의 기부미담으로 좌빨집안의 좌빨색깔을 지우려는 음모가 있다나. 그런데, 최진실 씨 죽음이 악플 때문이었다며 사이버모욕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문근영 악플에는 조용한지 모르겠다.

여당의 여성 정조위원장이 일등 신붓감은 예쁜 여교사요, 이등 신붓감은 못 생긴 여교사 운운했다는 것도 그렇다. 말 자체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 말을 해놓고 나서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분은 자신을 향한 비하발언을 한 사람을 고소했다고 하는데,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안 되고 남을 비하하는 것은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건물에 세든 업주에게 건물 명도소송을 내면서 바로 그 건물을 헌납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선거 때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놓고는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비판하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뒷조사를 했던 것처럼 나를 조사하고 처벌할 것인가.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든 누구든 비판할 거리가 말이 아니라 정책이었으면 차라리 좋겠다. 누구든 그 사람이 한 말을 비판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말이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속성이 있기 마련이라서 더욱 말에 대한 비판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다. 이 나라 지도층들이 제발 말을 가려가면서 했으면 좋겠다. 지도층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 주었으면 좋겠다.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오바마의 말에 감동했다. 미국인이 아닌 나도 감동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저렇게 품격있고 깔끔한 언어를 구사하는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부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때, 말은 잘 못하지만 일은 잘한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시대를 맞았다. 결과적으로 그 말이 먹힌 것이다. 정치는 '말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지만 오바마의 경우를 보면 확실히 정치의 핵심은 말인 것 같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이르는 것이다. 내용이 충실하면 설득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설득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담보하는 것은 실천이다. 정치인은 실천할 수 없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더더욱 실천할 수 없는 말을 해놓고도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다. 녹색성장을 말해놓고 그린벨트를 풀고, 서민 정책을 펼치겠다고 해놓고 2%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을 밀어붙이는 따위의 모순화법이 이 정부 들어서 극심해지고 있다.

아니 화법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언행 불일치다. 그 언행불일치의 최고 정점은 '오바마와의 닮은꼴 주장'일 것이다. 단지 '변화'와 '개혁'이라는 말이 같다고 해서 닮은꼴이라는 그 발상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을 무시해서 하는 발언인지, 말하는 그 사람이 수준 이하라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 수 없다. 나는 자기가 한 말이 뭐가 문제냐라고 되묻는 지도자보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면서 말을 하는 지도자를 간절히 원한다.



공선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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