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진정 죽이고 살린 것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08-10-07)
해외여행을 갔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 난감한 상황에서 동포를 만났다. 그 사람은 동포애를 발휘해서 나에게 약간의 돈을 주었다. 덕분에 나는 큰 낭패를 모면했다. 알고 보니 '친절한 동포'는 현지 북한 공관원이었다. 결론은? 나는 가차없이 국가보안법으로 엮이게 되어 있다. 이적단체의 기관원으로부터 공작금을 수령받았으니 말이다. 황당한가? 천만에, 노무현은 죽어도 못하지만 이명박은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심심하면 법과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겠다는 기염을 토하는 이명박의 기준으로 볼 때, 서울시 교육감 공정택은 당장 구속수사 해야 한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교육정책을 펴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그의 선거자금의 대부분을 사교육 업계가 지원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익단체의 로비스트로부터 작업비를 챙긴 거다. 조중동 가라사대, 주영복은 전교조의 하수인이란다. 그 말이 참이라면 공정택은 사교육 업계가 공교육 심장부에 박아 넣은 간첩이다.
최진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악플이 아니다. 정신병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모두가 쉬쉬하는 우울증의 악화가 근본 원인이다. 최고 연예인이라는 자존심과, 대중에게 어필한 밝은 이미지 때문에 그녀는 이 땅에서 결코 드물지 않은 우울증이라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치명적 부상을 감추고 경기장에 나서는 스타플레이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석연찮은 선수의 플레이에 팬들은 더러는 의아해하고, 더러는 황당해 하고, 더러는 화를 낼 것이다.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상황. 모든 오해는 선수가 자신의 진실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악플이 확실하게 죽여버린 대상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역사상, 아니, 5천 년 한민족 역사상 가장 건전하고 건강했던 시민 권력인 '참여정부'이다. 참여정부 5년간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경제가 죽었다는 악따구니를 집요하게 되풀이했다. 조중동의 지면과 한나라당의 주둥아리에서 참여정부의 경제는 단 한 순간도 '살아있던' 적이 없었다. 지난날의 경제가 사망상태라면 환율과 주가 수치가 역전되고 있는 오늘의 경제 상황은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철부지 증권사 여직원이 자기네들끼리 돌려보는 찌라시 조각을 인터넷에 생각 없이 올린 짓거리가 유명연예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악플이라면, 치밀하게 조직되고 기획된 정략적 의도로 5년간 경제의 실상을 왜곡하여 멀쩡한 경제에 사망선고를 하고, 가증스럽게도 멀쩡한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국민 사기 행각으로 전과 14범 파렴치한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행위는 물리적 무력이 없었을 뿐, 권력 찬탈 쿠데타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악플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아무리 하는 지랄마다 여러 사람 경악하게 하는 종자라 해도, 내가 일본산 설치류가 퍼런 집 뒤칸에 삼천 궁녀를 거느리고 있다는 루머를 퍼뜨려 보았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하긴 의자왕이나 변강쇠는 아무나 하나…) 악플이 조류 인플루엔자처럼 창궐하여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경우는 악플이 진실을 담고 있거나, 행여 진실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듣고자 원하는 진실'로 회자될 때이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부패한 수구들이 누려왔던 역겨운 위선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부패한 권력을 완전히 묻어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관행적으로 당연히 누려왔던, 당연히 내 것이라고 여겨왔던 알량한 기득권조차 원칙과 상식의 제단 위에서 다시 저울질해야 한다는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나보다 잘나고 강한 자들은 무조건 무장해제 시켜야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나보다 못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부터 무장해제 해야 한다는 사소한 진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참여정부는, 노무현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악당이 되어야 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뇌리 속 세상에서 가장 나쁜 존재와 노무현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무현은 빨갱이도 되고, 미제의 앞잡이도 되고, 영패주의자도 되고, 거지들의 선동가도 되었다가,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죽어도 무장해제 하기 싫은 나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한나라당과 조중동, 심지어 우리 편이라 믿어왔던 자들조차 본업으로, 취미로, 유희로, 자위행위로 집요하게 참여정부에 대한 악플을 풀어놓았고, 그 악플들은 그것이 진실이기를 간절히 원한 우리들의 말과 몸짓으로 참인 명제들로 화끈하게 둔갑했다.
나는 단언한다. 석가나, 예수나 공자나 마호메트라 할지라도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의 부패한 수구들이 총화단결 하여 참여정부에 쏘아댄 악플만은 견뎌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악플이 진정 죽여버린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역사상, 아니, 5천 년 한민족 역사상 가장 건전하고 건강했던 시민 권력인 '참여정부'였다.
똥을 퍼먹은들 자신이 향기롭고 맛있다 여기면 그만이겠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이명박을 사랑하는 엽기적 인간들이 없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이명박을 대통령에 당첨시킨 '진짜 위대한' 국민들은 따로 있다. 투표용지를 마주하지조차 않았던 사람들, 투표용지를 마주한 절체절명 선택의 순간, 노무현에 대한 미움, 노무현을 배신했던 정동영과 민주당에 대한 미움을 이명박의 선택이라는 추한 형태로 배설한 그런 사람들이 오늘날 절망의 불씨를 피워 올렸다. 악플은 참여정부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계승의 씨앗마저 처참히 짓이겨 버린 셈이다.
이명박의 대표공약 경부운하는 썰렁한 허무개그로 막을 내렸다. 공약의 황당함을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스크류가 돌면 강물이 정화된다는 류의 궤변이 진지한 반론으로 언론을 장식했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온갖 스캔들이 이명박을 둘러싸고 폭죽처럼 터져 나왔지만, 종국에 가서는 스스로의 입으로 사기꾼과 동업을 했다는 동영상이 세상에 빛을 보았지만, 끝까지 참여정부를 기사회생시키길 거부한 이 땅의 '진짜 위대한' 국민들은 그 모든 진실도 자신들이 참여정부 공격의 수단으로 애용한 악플과 동격으로 매도해 버렸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이명박에게 권력을 봉헌했다. 아니, 스스로의 목줄에 압박붕대를 감은 거다.
악플이 진정 죽이고 살린 것.
악플은 참여정부를 죽였으며, 빈사상태의 쥐새끼를 살려준 거다…….
ⓒ 내과의사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69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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