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하러에 해당하는 글 2

티벳에서의 7년최고의 블로그

유용한정보|2008. 4. 5. 05:41


올림픽을 앞둔 피벳에서 유혈사태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독립의 열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
우리가 한때 꿈꾸었던 희망을 그들은 아직도 꿈꾸고 있습니다.

티벳의 독립을 기원합니다~~!!!

1997년 할리우드에서는 두 거장이 동시에 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였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이 그것이다.
 
프랑스 거장 장 자끄 아노 감독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산악인으로 티벳에서 달라이 라마와 7년간의 교분을 나눈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실제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격변기 티벳 역사의 산 증인들과의 인터뷰를 하는 등 18개월간의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제작되었다. 소재와 스토리 만큼은 흥미롭고 매력적이긴 하나, 장 자끄 아노 감독이 오리엔탈리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하인리히 하러 역에 브래드 피트는 사실적인 히말라야 등정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위험한 산악 훈련도 서슴지 않았다. 그와 함께 티벳에 들어갔다가 결혼과 함께 정착하게 되는 피터 아우프슈나이터 역의 데이빗 틀리스는 마이크 리 감독의 <네이키드>에서 영화광으로 열연하여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하인리히 하러가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할 때 잡아낸 설산의 풍경은 아찔할 정도로 멋있다. 눈덮인 산정을 오르는 이들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나약하다.
 
어쨌든 나찌에 협력했다는 정치적 이유로 감금됐던 그가 탈출하여 나중에 만나는 인물은 현재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달라이 라마에게서 영적인 느낌과 평화, 비극적인 조국의 역사를 관조하는 인물로 충분히 묘사한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어린 소년이기 때문에 보다 순수하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는 비폭력 독립 운동을 벌이는 티벳과 저지하려는 중국의 오랜 대립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영화화한 덕분에 <티벳에서의 7년> 개봉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 <베어>, <연인>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작품으로는 다소 실망스럽다. 티벳과 중국 간 대립의 역사적 배경보다는 주인공의 개인적 문제에 더 비중을 다루기 때문이다. 덕분에 브래드 피트의 잘생긴 얼굴만 돋보인다.
 
서구인들은 자신의 문화나 사고로 이해할 수 없을 때 동양을 신비롭게 그려왔는데, <티벳에서의 7년>도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실제주인공 별세

▲ 달라이라마(왼쪽)와 하러(오른쪽), 2005년 7월 28일 독일 비스바덴에서(AFP)
티베트 역사서이자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의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의 실제 주인공인 오스트리아의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가 향년 93세로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의 포로가 된 하러는 당시 동료와 함께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결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1944년, 그들은 결국 티베트 성지로 간신히 도망친 후 그곳에서 달라이라마 14세와의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53년, 하러는 당시의 경험담을 모아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 48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하러는 티베트에서 1951년까지 머물며 당시 어린 달라이라마의 외교고문이자 스승으로 과학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1950년 중공군이 티베트을 침공하자 하러는 티베트 수도 라사를 떠나 결국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지만 평생 달라이 라마와의 우정을 유지했다.

오스트리아 총리인 볼프강 쉬셀은 “비록 숨졌지만 후세들은 계속 하러의 멋진 인생에 매료될 것”이라며 등반가이자 모험가, 작가, 그리고 인권운동가라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 탐험가의 마지막 원정을 추모했다.

2006년 1월 9일
데일리 차이나 -
http://dailychina.net

 
 
 

 
 


epiloque

중국의 점령 이후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고 6천 여곳의 사원(Monasterles)이 파괴됐다.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중국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지금도 하러와는 절친한 친구다.
 
'Seven Years In Tibet' ost  -  John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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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앞둔 피벳에서 유혈사태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독립의 열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
우리가 한때 꿈꾸었던 희망을 그들은 아직도 꿈꾸고 있습니다.

티벳의 독립을 기원합니다~~!!!

1997년 할리우드에서는 두 거장이 동시에 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였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이 그것이다.
 
프랑스 거장 장 자끄 아노 감독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산악인으로 티벳에서 달라이 라마와 7년간의 교분을 나눈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실제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격변기 티벳 역사의 산 증인들과의 인터뷰를 하는 등 18개월간의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제작되었다. 소재와 스토리 만큼은 흥미롭고 매력적이긴 하나, 장 자끄 아노 감독이 오리엔탈리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하인리히 하러 역에 브래드 피트는 사실적인 히말라야 등정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위험한 산악 훈련도 서슴지 않았다. 그와 함께 티벳에 들어갔다가 결혼과 함께 정착하게 되는 피터 아우프슈나이터 역의 데이빗 틀리스는 마이크 리 감독의 <네이키드>에서 영화광으로 열연하여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하인리히 하러가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할 때 잡아낸 설산의 풍경은 아찔할 정도로 멋있다. 눈덮인 산정을 오르는 이들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나약하다.
 
어쨌든 나찌에 협력했다는 정치적 이유로 감금됐던 그가 탈출하여 나중에 만나는 인물은 현재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달라이 라마에게서 영적인 느낌과 평화, 비극적인 조국의 역사를 관조하는 인물로 충분히 묘사한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어린 소년이기 때문에 보다 순수하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는 비폭력 독립 운동을 벌이는 티벳과 저지하려는 중국의 오랜 대립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영화화한 덕분에 <티벳에서의 7년> 개봉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 <베어>, <연인>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작품으로는 다소 실망스럽다. 티벳과 중국 간 대립의 역사적 배경보다는 주인공의 개인적 문제에 더 비중을 다루기 때문이다. 덕분에 브래드 피트의 잘생긴 얼굴만 돋보인다.
 
서구인들은 자신의 문화나 사고로 이해할 수 없을 때 동양을 신비롭게 그려왔는데, <티벳에서의 7년>도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실제주인공 별세

▲ 달라이라마(왼쪽)와 하러(오른쪽), 2005년 7월 28일 독일 비스바덴에서(AFP)
티베트 역사서이자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의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의 실제 주인공인 오스트리아의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가 향년 93세로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의 포로가 된 하러는 당시 동료와 함께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결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1944년, 그들은 결국 티베트 성지로 간신히 도망친 후 그곳에서 달라이라마 14세와의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53년, 하러는 당시의 경험담을 모아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 48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하러는 티베트에서 1951년까지 머물며 당시 어린 달라이라마의 외교고문이자 스승으로 과학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1950년 중공군이 티베트을 침공하자 하러는 티베트 수도 라사를 떠나 결국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지만 평생 달라이 라마와의 우정을 유지했다.

오스트리아 총리인 볼프강 쉬셀은 “비록 숨졌지만 후세들은 계속 하러의 멋진 인생에 매료될 것”이라며 등반가이자 모험가, 작가, 그리고 인권운동가라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 탐험가의 마지막 원정을 추모했다.

2006년 1월 9일
데일리 차이나 -
http://dailychina.net

 
 
 

 
 


epiloque

중국의 점령 이후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고 6천 여곳의 사원(Monasterles)이 파괴됐다.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중국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지금도 하러와는 절친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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