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정규3집 THE BOYS 티저 #1 #2 이미지 플래쉬 월드와이드 컴백!

방송&연예|2011. 10. 8. 04:42

소녀시대는 오는  10월 중순, 정규 3집의 타이틀 곡인 ’The Boys(더 보이즈)’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각종 음원 사이트는 물론 아이튠즈를 통해 미주, 유럽, 남미 등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10월 5일에는 앨범 전곡을 오픈, 다시 한번 ‘소녀시대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이번 앨범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걸그룹으로 성장한 소녀시대의 명성에 맞게 '월드와이드' 콘셉트로 기획, 타이틀 곡 'The Boys'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한국어와 영어버전 두 가지로 공개하는 만큼, 전세계 음악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기대된다.

특히 타이틀 곡 'The Boys'는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이자, 세계 3대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테디 라일리가 직접 작곡, 편곡에 참여한 곡이며, 테디 라일리는 90년대를 강타했던 'New Jack Swing'의 창시자 'Black Street'의 멤버로, 현재도 레이디가가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등 최고의 프로듀서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 소녀시대와 테디 라일리의 만남은 더욱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새롭게 선보일 소녀시대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SM의 글로벌 네트워크 시스템과 탁월한 프로듀싱을 기반으로 더욱 완성도를 높인데다, 한층 성장한 소녀시대 멤버들의 뛰어난 역량까지 더해져, 소녀시대의 차별화된 위상과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로 구성, 글로벌 음악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게다가 정규 3집 'The Boys'는 소녀시대가 작년 10월 발표한 세 번째 미니 앨범 '훗' 이후 11개월 만에 발표하는 소녀시대의 새로운 음반으로, 세계적인 작곡가 테디 라일리를 비롯한 유명 작곡가 들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소녀시대의 매력적인 보컬과 다양한 음악색깔을 만날 수 있는 12곡을 담았다.

한편, 26일부터 새롭게 변신한 멤버별 티저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공개, 소녀시대의 새로운 음악 및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으며, 정규 3집'The Boys'는 10월 중순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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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행사

방송&연예|2010. 5. 5. 08:12

어린이날행사
올해로 88회째를 맞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역사박물관과 청계청문화관 등 서울지역 곳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펼쳐진다.

서울 역사박물관 로비에서는 이날 오전 '늘푸른 오스카빌 어린이 합창단'이 국내 동요를 시대별로 재구성해 편곡한 '놀이 동요'를 들려준다.

이어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티나터너 등 해외 유명 가수의 인형을 쓰고 펼치는 음악 공연 '캐릭터 쇼'와 인기 TV 퀴즈쇼를 모방해 역사박물관 콘텐츠를 주제로 서울역사왕을 선발하는 '골든벨을 울려라', 15cm 크기의 종이모형으로 서울성곽을 완성시키는 '100m 서울성곽쌓기'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린다.

서울청계천문화관에서는 산업자재와 재활용 악기 등으로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친환경 퍼포먼스 그룹 '노리단 에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어린이 응원단 '레인보우'의 이색 응원 퍼레이드, 어린이를 위한 에니메이션 영화 상영 등이 예정돼 있다.

디장인서울총괄본부는 이날 월드컵공원 평화잔디광장에서 '2010 어린이디자인창의력캠프'를 연다.

어린이날 행사 정보
유치원 어린이날 행사~
SK,LG 풍성한 어린이날 행사 준비
부산국제모터쇼, 어린이날 행사 '풍성'

경기지역 주요 행사 정보 모음(서울어린이날행사...  
푸르른 오월, 경남도내 어린이날 행사!
청주 어린이날 행사, 충북 어린이날 행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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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잭슨 장례식 생중계[Michael Jackson's memorial ceremony Live ]

유용한정보|2009. 7. 8. 04:17

마이클 잭슨 장례식 '지상 최대의 쇼'
[2009/07/08 01:00~]

KING OF POP - Michael Jackson's memorial ceremony Live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이클잭슨의 장례식이 우리나라 시간 7월8일 밤 12시에 진행되고 이어 지상최대의 추모행사가 새벽 2시부터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립니다.

이 세기의 장례식은 현장인 스테이플스 센터에서는 1만7000명의 자리가 제한돼 인터넷신청 180만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끝에 1인2매 8500명에 입장권이 배부됐습니다. 인근 노키아 극장에서도 대형 멀티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며, 약 30만명 가량이 스테이플스 센터 주변에서 마이클 잭슨의 장례를 추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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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잭슨 장례식 생중계

유용한정보|2009. 7. 7. 22:57
Michael Jackson
Michael Jackson by CainAndToddBenson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년 8월 29일 (미국) - 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마지막 가는 길

(한국시간으로 8일 오전 2시)
미국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 열린다. 수많은 톱스타들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장례식에는 머라이어 케리와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추모공연을 펼친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전 여자친구인 브룩 실즈와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드, 어셔, 비욘세, 휘트니 휴스턴 등도 참석한다.

이날 장례식 개막 선언은 마이클 잭슨의 유언장에서 '2차 후견인'으로 지목된 다이애나 로스가 맡았으며 추도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았다. 장례식 실황은 ABC, CBS 등 미국 5개 방송사에 생중계 되며 미국 전역의 80여개 대형극장에서도 무료로 방송된다.


마이클잭슨 장례식 생중계 보러가기

Michael, Rest in Peace
Michael, Rest in Peace by Tony the Misfit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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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 머라이어,해리닐슨,베드핑거

음악이야기|2008. 2. 16. 06:52



Without You  - Sung by Mariah Carey

 

당신없이는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n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No,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When I had you there
But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Well,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 give anymore
** Repeat
이 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떠나갈 때의 당신의 표정도요.
그렇지만 보통 사랑이란 것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구나하고 생각하기도해요.
당신은 내내 미소를 머금고있지만,
당신의 눈에서 슬픔을 볼 수 있어요.
정말 슬픈 걸 알 수있다구요.

내일이 되어도 잊을 수가 없을 꺼예요.
이 슬픔이 모두 생각날 테니까요.
당신이 저와 같이 있어줬지만
저는 당신을 보내야만 했지요.
이제 당신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당신이 마땅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사실을...

제 인생에서 당신이 사라진다면
제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살아갈 수 없다구요.
더 이상 당신에게 줄 것도 없군요.
제 인생에서 당신이 사라진다면
제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더 이상 당신에게 줄 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오늘 저녁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떠나갈 때의 당신의 표정도요.
그렇지만 보통 사랑이란 것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구나하고 생각하기도해요.
당신은 내내 미소를 머금고있지만,
당신의 눈에서 슬픔을 볼 수 있어요.
정말 슬픈 걸 알 수있다구요.
**
제 인생에서 당신이 사라진다면
제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살아갈 수 없다구요.
더 이상 당신에게 줄 것도 없군요.  
제 인생에서 당신이 사라진다면
제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살아갈 수 없다구요.
더 이상 당신에게 줄 것도 없군요.
** 반복




 NOTES...

::::  Without You  ::::
   Harry Nilsson, Air Supply, Mariah Carey 등이 불러 커다란 인기를 얻은 이 노래의 원곡은 비틀즈를 대적할 밴드로 손꼽히던 'Badfinger'가 1970년 발표한 그들의 두 번째 앨범 <No Dice>에 실려 있던 곡이다. Iveys란 밴드명으로 시작했던 Badfinger는 Beatles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들의 데뷔 앨범 <Magic Music Christian>을 위해 Paul McCartney가 'Come And Get It'의 곡을 써 주기도 했으며 실제로 이들의 음악에서 비틀즈와의 유사성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 곡은 Badfinger의 중심 멤버였던 'Peter Ham'과 'Thomas Evans'가 쓴 곡이다. Peter Ham은 1975년 4월 23일 27살의 나이로 목을 매달아 자살했고 Thomas Evans 역시 8년 후인 1983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랑하는사람이 떠나고 난 후 그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요'라고 애절하게 애원하는 노래인 명곡 "Without You" 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Badfinger'가 불렀던 노래였지만 노래를 발표한 후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아 좌절과 자금난을 겪자 이 곡을 '해리 닐슨'에게 주었는데이 곡이 크게 히트하게 되자 판권을 되찾지 못한 'Badfinger' 의 두 멤버 '피터'와 '톰'이 모두 자살해 버리고 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추측만 무성하다고 한다. 먼저 피터가 자살을 했고 8년 뒤에 톰도 자살을 했는데 피터의 죽음이 자신의 노래가 그렇게 된것에 대한 비관인지 아니면 당시 팬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던 터라 그걸 비관했던 것이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배드핑거의 리더 '피터 햄'은 순회 공연 중 '우리는 제2의 비틀즈 따윈 필요 없다'는 한 관객의 말에 상처를 입고 자살을 했다하는 설도 있다 한다.
   아무튼 그 후 'Badfinger'의 노래를 취입해 자신의 최대 히트곡으로 만든 'Harry Nilsson' 조차 심한 알콜중독으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그에 뒤이어 1994년 뒤늦게 "Without You" 를 리메이크하여 히트를 기록했던 '머라이어 캐리' 조차도 유리로 손목을 그어 자살 기도를 했으나 메니저에게 극적으로 발견되어 살아났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Without You" 를 부른 가수들마다, 호주 출신의 환상적 듀오 'Air Supply'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살 및 죽음과 연관이 되니 이 노래가 '저주받은 노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법 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Without You" 가 명곡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Harry Nilsson' 이 부른 "Without You" 는 1972년 2월 19일자로 차트정상에 랭크하여 4주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해리 닐슨'의 곡은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고 '에어 서플라이'는 감미로운 감을 더해 주고 있으며, '머라이어 캐리'는 R & B 적인 열창이 돋보인다.

::::  Mariah Carey  ::::
   1970년 뉴욕 출생의 머라이어 캐리는 90년대 연속 9장의 앨범을 300만장 이상 팔아치우며 90년대 가장 많은 음반 판매를 기록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이다.
   175 센티미터의 키에 60 킬로그램의 체중, 갈색 곱슬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그녀는 백인도 흑인도 아닌 독특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아일랜드 계열의 백인 어머니와 베네주엘라 출신의 흑인 사이에서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그녀의 독특한 피부색은 백인, 흑인 모두가 그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그녀가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가 음악 연습을 할 때 옆에서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소질을 보였던 그녀는 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머라이어 캐리의 데모 테잎이 우연히 소니 뮤직의 사장 토미 모톨라에게 전달되어 수소문 끝에 그 데모 테잎의 주인공을 찾아낸 토미 모톨라는 88년 11월 그녀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90년 그녀는 데뷔 앨범 [Mariah Carey]를 발표한다. 데뷔 앨범에서 'Vision of Love', 'Love Takes Time', 'Someday', 'Don't Wanna Cry'를 빌보드 정상에 올리며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른 그녀는 동년 그래미상 5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최우수 팝보컬'과 '최우수 신인'의 2개 부문을 수상한다.
    1991년 그 여세를 몰아 2집 앨범 [Emotions]를 발표한 그녀는 캐롤 킹과 함께 앨범을 만드는 등 음악적으로 한결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앨범을 차트 정상에 올리긴 했지만 그 인기가 전작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같은 해 M-TV 언플러그드 라이브 공연에서 예전 잭슨파이브(마이클 잭슨이 불렀다.)의 히트곡인 'I'll Be There'를 리메이크 하여 빌보드 정상에 올리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일구어낸다.
   '93년 3집 앨범 [Music Box] 역시 대 성공을 거두어 첫 싱글인 'Dreamlover'가 정상에 오르고, 뒤이어 'Hero'가 정상을 밟는다. 3집 앨범에서 다시 한 번 대성공을 거둔 그녀는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소니 뮤직의 사장 토미 모톨라와 결혼한다. 팝 음악계의 대 재벌과 부부관계를 맺은 그녀는 자신의 인기와 역량에 막강한 후원자까지 얻게되면서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94년 같은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Without You'(해리닐슨과 에어 서플라이가 이미 부른 바 있는 명곡을 리메이크하여 수록하였다.)를 영국 차트 정상에 올린 그녀는 95년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표하고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와 'Santa Clause Coming to Town'을 연이어 히트시키는 기대치 않은 성공까지 거두게 된다.
   '95년 [Daydream]에서 첫 싱글 'Fantasy'를 정상에 올린 그녀는 이 앨범에서 흑인 R&B 그룹 보이즈 투 맨과 함께 노래한 'One Sweet Day'를 빌보드 차트 정상에 16주간 올려놓으면서 빌보드 정상에 가장 오래 머문 곡으로 기록을 세우게 된다.
   '97년 그녀의 막강한 후원자였던 토미 모톨라와 이혼한 그녀는 같은해 [Butterfly]를 발표한다. 'Honey', 'My All'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자신 혼자서도 설 수 있음을 보여준 그녀는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으며 98년 [#1's]라는 빌보드 정상 곡으로 이루어진 베스트앨범을 내놓기에 이른다. 자신의 빌보드 1위곡만으로 앨범 하나를 채운 이 앨범으로 팬들에게 자신의 인기와 위상을 과시했다.
   '99년 그녀는 통산 여섯 번 째 정규 앨범인 [Rainbow]를 발표한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퍼프 대디를 포함한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며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을 선보이게 된다. 또한 이 앨범에서 그녀는 첫 싱글인 'Heartbreaker'를 차트 정상에 올리며 13곡의 빌보드 1위곡을 보유한 마이클 잭슨을 누르고 차트 정상 곡 보유 아티스트 3위의 자리에 올라선다. 그리고 영국 출신의 보이 밴드 웨스트 라이프와 듀엣곡을 발표하여 인기를 얻기도 했다.
   토미 모톨라와의 이혼 이후 과감한 노출과 육감적인 뮤직비디오들을 내놓으며 섹시한 가수로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는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하였으며 14곡의 빌보드 1위 곡을 만들어내면서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팝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빌보드 1위 곡을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20개의 빌보드 1위 곡을 보유하고 있는 비틀즈와 18개의 1위 곡을 보유하고 있는 엘비스가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녀의 맹추격에 덜미를 잡힐 수 있는 상태이다.)   [ From Koreamusic.net ]
 

::::  Harry Nilsson  ::::
   싱어송 라이터로써 197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Harry Nilsson'은 1941년 6월 15일 뉴욕 브룩클린에서 출생했다. 본명이 'Harry Edward Nilsson 3세'인 그는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사춘기를 보낸 다.
   맹인 가수 레이 찰스를 특별히 좋아했던 그는 장차 레이 찰스와 같이 훌륭한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며 성장하였고 사회인이 된 뒤에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직장인이 되고서도 은행의 컴퓨터기사로 일하면서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자신이 작곡한 노래들을 들고 레코드회사들을 순회하며 반응을 살피는 일에 더 부지런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명 프로듀서인 필 스펙터에게 발탁되었고, 얼마 후 그룹 Yardbirds의 `Ten Little Indians'를 비롯해 여러 그룹과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해주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또, Blood Sweat And Tears의 `Without Her', Three Dog Night의 `One'등을 작곡해 1969년 히트되었고, 그 해에 영화 “Midnight Cowboy"의 사운드 트랙 `Everybody's Talking'을 히트시켜 스타덤에 오르며 팝계에 등장했으나 콘서트나 쇼를 즐겨하지 않아 대중들에게는 그리 잘 알져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발표되어 전 세계적으로 대 인기를 누렸던 가슴 저린 사랑의 곡 <Without You> 이후에는 많은 이들과 친숙해진 아티스트로 알려졌다.
   Harry Nilsson 하면 으레 떠올리는 노래가 "Without You" 한 곡뿐이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여러 히트곡을 내면서 스타의 자리에 있었던 가수이다. 작곡과 작사, 이를 노래하는 가수가 분업화된 시기에 등장하여 새로운 형태의 전천후 뮤지션으로 주목받은 그는 어색하기만하던 싱어 송 라이터의 개념을 팝계에 심어놓았다. 존 레논은 생전에 그를 가리켜 ”레코딩 뮤지션과 아티스트로서의 해리 닐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인중의 하나이다.“라고 극찬하였다. 당시 그의 인기도는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인사 베스트 40‘에 선정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1971년으로 접어들어 `Me And My Arrow'가 인기를 얻었고, 이어 발표한 싱글 `Without You'는 지금도 팬들의 사랑받는 명곡으로 당시에 세계적으로 대히트하였다. 그는 특별히 어느 한 형태의 음악성에 치중하지 않으며 소재면에서도 구애되지 않는 아티스트로 평가되는 데 70년대 후반 영화 "World's Greatest Lover"와 "Popeye"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했을 뿐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  Badfinger  ::::
   영국 출신의 4인조 팝 록 밴드 배드핑거(Badfinger)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박복'하다. 비틀즈의 지원사격 덕분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시작된 그들의 성공은 불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들은 비틀스 때문에 성공했고 비틀스 때문에 좌절했다. 활동 후반부 그들은 비틀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창작력의 부재와 금전적인 문제가 끼어 들면서 주축 멤버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영욕(榮辱)으로 점철된 밴드의 역사를 마감했다. 때문에'Carry on till tomorrow', 'No matter what', 'Maybe tomorrow', 'Day after day', 그리고 해리 닐슨(Harry Nilsson)과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가 커버한 'Without you' 같은 명곡들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드핑거는 가장 불행한 팝 그룹 중 하나로 기억된다.
   1960년대 후반 비틀스가 설립한 '애플' 레코드에서 처음으로 계약한 밴드는 피트 햄(Pete Ham/보컬), 마이크 기본스(Mike Gibbons/드럼), 톰 에반스(Tom Evans), 론 그리피스(Ron Griffiths/베이스)로 구성된 디 아이비스(The Iveys)라는 이름이었다. 이들은 곧 배드핑거로 개명하고 1970년 데뷔 앨범 <Magic Christian Music>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폴 매카트니가 작곡해 비틀스의 체취가 짙게 묻어나는 'Come and get it(7위)'과 'Maybe tomorrow', 그리고 국내에서 이들의 대표 곡으로 자리 매김을 한 'Carry on till tomorrow' 같은 곡들이 들어있다. 사이키델릭 요소를 담고 있는 'Carry on till tomorrow'와 로큰롤 트랙 'Rock of all ages'는 비틀스의 드러머인 링고 스타(Ringo Starr)가 주연한 영화 <매직 크리스찬>의 사운드트랙에도 수록되어 다시 한번 비틀스와 배드핑거의 남다른 관계를 과시했다.
   'No matter what(8위)'와 그 유명한 'Without you'가 수록된 2집 <No Dice>는 처녀작이 공개된 1970년 연말에 발표되어 음악언론의 호평과 더불어 이미 공고화된 대중적 인기에 박차를 가했다. 'No matter what'은 나중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나우 앤 덴>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어 당시 분위기를 훌륭하게 살려내는데 일조했다.
   특히 'Without you'는 'Everybody's talking'이나 'Jump into the fire'로 유명한 싱어 송라이터 해리 닐슨(Harry Nilsson)이 1971년에 리메이크 해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팝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비틀스의 노래인 줄 알았다”라고 닐슨이 회고할 정도로 당시 배드핑거의 음악은 비틀스와의 인연을 뗄 수 없었다. “제작자인 리차드 페리와 함께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는 이 곡이 고전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언급한 대로 이 노래는 팝의 명곡으로 안전 착륙했고 1990년대에 에어 서플라이와 머라이어 캐리가 커버해 팝의 클래식임을 증명했다. 배드핑거에게는 억울한 일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 스스로가 싱어송라이터인 관계로 해리 닐슨이 'Without you'을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다(사실 해리 닐슨은 여성을 방불케 하는 하이 톤 보컬로 원곡에 없는 악센트를 부여했다).
   1971년의 <Straight Up>은 로커 토드 룬그렌(Todd Rundgren)과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앨범 제작을 맡아 주었다. 1982년에 발표된 영국 출신 뉴 웨이브 싱어 송라이터 조 잭슨(Joe Jackson)의 'Breaking us in two(18위)'와 유사한 멜로디를 뽑아 낸 'Day after day(4위)'와 1980년대 초반의 팝록 사운드를 이미 10여년 전에 구현한 'Baby blue(14위)'가 이 음반의 가치를 높여 주었다.
   영국에서 출발한 이 4인조 밴드의 네 번째 앨범 <Ass>는 애플 레코드에서 발표하는 마지막 '열매'였다. 대형 히트 싱글은 없었지만 밴드가 직접 음반 제작에 참여하면서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이 LP부터 배드핑거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번져갔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들의 음반들은 레코드 매장에서 재고의 양이 점차 증가했고 그에 따라 이들에겐 재정적인 문제와 멤버간에 불협화음이 잇따랐다.
   음반사를 워너로 바꾸고 1974년 말에 <Wish You Were Here>를 공개했지만 초기 디스코의 자극적인 리듬과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후련하고 화려한 음악에 매력을 느낀 대중들은 더 이상 이 영국 밴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신보의 판매력이 급격히 힘을 잃기 시작하자 적자에 빠진 리더 피트 햄은 1975년 4월 23일 차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충격에서 벗어나 새 열매를 맺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1979년에 공개된 음반 <Airwaves>마저 그리던 성공은 재현되지 못했다. 디스코나 부드러운 발라드 아니면 성인 취향의 록음악이 당시를 호령하던 1970년대 말에 이들의 음악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981년에 발표된 <Say No More>까지 계속되었고 그 참패의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실패와 재정 문제는 음악방향을 잠식해 톰 에반스와 조이 몰랜드는 전화로 심하게 다툰 후 에반스도 피트 햄처럼 목을 매 자살했다. 1983년 11월 19일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이 사건으로 밴드는 공식적인 해산을 발표했다. 화려한 인기의 뒤안길에 잠복하고 있는 외로움과 고통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와 누구는 그것을 즐기고 어떤 이는 무너진다. 아마도 팝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종말이 배드핑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비극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우리의 귀를 낭만적으로 자극한다. 훗날 언젠가 그들의 탁출(卓出)한 멜로디 제조능력이 재조명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Carry on till tomorrow!! [ From Izm.co.kr ]

 

Without You


Harry Nilsson - Without You

 

Mariah Carey - Without You

Badfinger - WIthout You

Air Supply -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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