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살리기에 해당하는 글 2

김문수와 유시민家와의 인연

시사이야기|2010. 5. 16. 16:07

“김문수, 좀 쿨하면 안 되겠니?”
우리들의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


▲ 14일 오후 SBS TV '시사토론'이 열린 서울 목동 SBS 스튜디오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가 맞장토론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 14일 자정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김문수, 유시민 두 후보가 지상파 TV에서 맞짱토론을 벌렸다. 서로 상대후보를 1분간 칭찬해주는 순서에서 김문수 후보는 자신이 가장 어려웠을 때 유시민과 두 누이가 적극 나서서 도와준 것에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무슨 내용인지 사뭇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 여기, 지난날 한때 혈맹으로 지냈던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을 올린다.


1986년 ‘김문수 일당’이 체포되던 날

1986년 5월 6일 자정 무렵, 잠시 1단지 주공아파트 125동 5층, 머리를 짧게 깎은 사복 차림의 건장한 청년들이 문을 부서지라고 걷어찼다.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그들은 드릴을 가져와 문을 뚫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사복들이 옥상에서 줄을 타고 베란다 쪽으로 접근했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너희들 뭐냐! 영장을 제시해!”
“이 새끼들! 죽을래!”

베란다 안쪽에서 누군가 저항을 하는지, 고함소리와 격렬하게 서로 치고받는 소리가 심야의 아파트단지에 울려 퍼졌다. 놀란 주민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었다. 사복과 경찰들이 이미 일대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상황은 오래지 않아 종료되었다. 등 뒤로 수갑을 채인 사람들이 맨발로 하나둘씩 건장한 사복들에게 끌려나왔다. 20~30대의 남자 넷, 여자 둘이었다. 검은색 승용차가 서 있는 곳으로 끌려가던 그들 가운데 몇이 웅성거리며 모여서 있던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그들은 사력을 다해 외쳤지만 이내 입이 틀어막혔다. 체포된 사람들은 김문수(당시 서노련 지도위원)를 비롯해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중심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에 앞서 이미 5월 3일부터 사흘 동안 6명의 다른 활동가들이 체포되었다.

5월 3일 새벽, 활동가 박정애가 을지로의 정화인쇄소로 <노동자신문>을 찾으러 갔다가 잠복하고 있던 수사관에게 검거되면서 윤현숙, 김진태 등 <노동자신문>을 담당하고 있던 활동가 6명이 모임장소나 자취방 등지에서 줄줄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한 명에게서 잠실 아파트의 전화번호가 나오면서 또다시 6명이 한꺼번에 체포된 것이었다.

이들은 체포된 뒤 모두 눈을 가리운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갔다. 눈을 가렸던 수건이 풀리는 짧은 순간, 주변의 우거진 나무가 눈에 들어왔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건장한 청년들이 머리고 등이고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몽둥이를 내리쳤던 것이다. 몇몇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잠시 뒤 방음장치가 된 하얀색 취조실에서 깨어난 그들 앞에는 더 모진 구타와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잡힌 신문팀의 경우 김문수와 심상정의 행방을, 나중에 잡힌 활동가들의 경우 심상정과 박노해의 행방을 추궁당하면서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가혹행위를 당했다. 구타와 잠 안 재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손발을 묶어 매다는 통닭구이, 수건을 얼굴에 씌워놓고 코로 물 먹이기, 심지어 전기고문까지 자행했다.

특히 심상정과 함께 서노련의 핵심 지도부로 알려진 김문수가 가장 심하게 당했다. 그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철제의자에 묶인 채 전기고문과 고춧가루 물 먹이기 고문을 번갈아 당했다. 견디다 못해 엉터리로 약도를 그려주자 앰뷸런스에 실어 그곳으로 데려갔다가 속았다는 걸 알고는 앰뷸런스 안에서 전기방망이로 온몸을 지져대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결국,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물도 못 마시고 피오줌을 싸는 상황에 이르자 수사관들은 그를 어떤 병원으로 싣고 갔다.

울창한 숲 속에 있는 그 병원이 대체 어떤 곳인지, 그들을 체포한 자들이 누구인지, 하얀색 방들이 즐비하고, 물 고문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듯한 바퀴 달린 스테인리스 물통, 코에 부은 물이 아래로 흘러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고안된 전기고문용 철제의자가 있는 그곳이 대체 어디인지 연행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곳이 어딘지 알아낸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들이었다. 당시는 ‘5·3 인천사태’ 직후로 대규모 연행과 구속, 수배가 이어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비슷한 시기에 연행되었다 풀려난 노동자와 학생들을 수소문해 ‘비행기 소리가 자주 들렸다’는 등의 몇 가지 단서를 확인하고는 끈질긴 추리와 조사로 강동구 거여동의 야산 속에서 수상한 건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곳은 보안사령부 분실(흔히 송파 보안사라고 함)이었다. 군 수사기관이 민간인을 영장도 없이 연행해 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것이었다. 83년의 유화국면 이후로 다소 느슨해졌던 5공 정권의 폭압성은 ‘5·3 인천사태’를 분기점으로 다시 초강경으로 치달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안사가 직접 민간인들을 연행하여 수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구속된 ‘김문수 일당’ 석방에 나선 나와 유시민

서노련 사건은 학생운동조직이나 재야단체가 아니라 ‘노동자 정치조직’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지만, 가족들의 대담하고 조직적인 투쟁으로도 유명했다. 활동가들의 남편이나 아내, 형제들 중에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이 많은 까닭이었다.

연행기관이 보안사임을 확인한 가족들은 5월 14일 오후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 민가협, 민통련 의장단 등과 협조하여 외신기자 2명을 데리고 송파 보안사 정문 앞에서 기습적인 시위·농성을 벌였다.

“여기는 군사작전지역”이라는 으름장과 정·사복 군인들의 제지에도 굴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철문을 붙들고 늘어져 가족들은 마침내 보안사로 하여금 연행 및 구금 사실을 시인하게 만들었다. 연행된 이들이 13일 새벽에 모두 서울시경으로 이첩되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가족들은 곧바로 서울시경으로 달려가 면회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 후, 16일 오후에는 흔히 대공분실로 불리는 장안동 서울시경 5계를 기습하여 지하실에서 지상 3층까지를 샅샅이 뒤지는 대담한 투쟁을 벌였다. 서노련 활동가들에게 정식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5월 15일 밤, 서울시경 대공분실에서 각 경찰서로 분산 수감된 직후였다.

가족들의 피나는 투쟁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그들은 5월 16일 저녁, 경찰서장실 앞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열흘간 ‘실종’ 상태였던 연행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고문사실을 알고 이를 전단으로 만들어 알렸다.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이던 보안사를 기습해 철문을 두드리고, 장안동 대공분실을 쳐들어가는 대담성은 당시 위축되어 있던 가족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이것이 무슨 소설의 한 대목이냐고? 아니다. 실화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고? 나 유시춘과 지금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후보가 된 유시민이 직접 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김문수와 함께 한밤에 군인들에게 연행되어간 사람이 나의 막내동생 유시주(현재 희망제작소 소장)이기 때문이다.

서노련은 구로동맹파업이 거둔 성과 위에서 동맹파업을 주도한 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들이 제기한 새로운 문제의식에서 출범한 조직이었다. 모토는 이러했다.

“노동3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탄압하는 폭압적인 정치상황에서는 노동운동도 경제투쟁을 넘어서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노동운동은 하나의 부문 운동이 아니라 전체 사회변혁운동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으로만 노동자들을 조직하려 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과 투쟁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노동자 대중조직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서노련은 ‘정치적 노동운동’을 시도한 조직이었다. 서노련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을 위한 <노동자신문>을 발간하여 구로공단 주변 노동자 주거지역에 배포하고, 임금인상투쟁과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활동, 그리고 노동운동탄압에 항의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86년 3월의 가리봉동 모세미용실 점거 시위, 86년 4월의 전태일기념관 농성, 86년 5월 구로공단 일대에서의 노동절 시위 등)를 전개하였다. 실로 헌신적이고 뜨거운 투쟁이었다.

핵심 활동가들이 대거 구속되면서 서노련은 86년 말 해산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실천적으로 제기한 게 서노련의 공이라면 교조주의적 운동이론, 관념적 급진성은 과로 평가된다. 말하자면 김문수가 주도한 이 정치적 노동운동은 전두환 군사정권과 가장 치열하게 맞서 싸운, 한나라당식 표현으로 ‘극좌빨’ 조직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김문수를 법정에서 처음 만났다. 일부러 법정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수갑을 찬 채 오랏줄에 꽁꽁 묶여 나타났다. 우리는 교도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서로 안부를 나누었다. 그는 열혈투사답게 의연했다.

나를 감동시킨 건 그날 그의 법정 모두진술이었다. 그는 무려 2시간여 동안 전두환 군사정권을 맹폭했다. 전두환 이름 앞에다 매번 ‘저 광주학살과 군사반란을 저지르고’로 시작하는 수식어를 달아 붙였다. 실로 용기백배하게 해주는, 그 기백이 하늘을 찌르는 진술이었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홍성우 변호사가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김문수는 평소 무얼 먹고 살았기에 저렇게 힘이 좋아요?”

나는 그것이 강철같은 신념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존경했다.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의 인연은 위와 같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문수와 유시민의 인연을 피상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함께했던 인연은 그런 것이었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영장 없이 체포되어간 김문수 선배의 안위를 애타게 걱정하면서 그의 석방운동에 매진하던 유시민은 경기지사를 두고 그와 경쟁하는 사이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김문수 캠프의 대변인라는 이가 일전에 유시민을 가리켜 ‘부패무능한 친노집단의 위장개업’ ‘전국구 철새, 메뚜기 후보’ 어쩌고 하면서 터무니없이 마구 포격을 퍼부었다.

삶이 무상하니 신념 또한 무상한 것인가?
허무하다.

군사정권을 범죄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그 뜨겁고 매운 의지를 불태우던 청년이 오늘날 그들의 후예집단의 선봉장으로 있다니!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살리기’를 옹호하고, 그가 열렬히 맞서 투쟁했던 독재자의 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그러나 그 선거캠프는 언어를 좀 가려서 쓰라. 여당의 품격을 최소한이나마 지켜주었으면 한다. 정책으로 대결하고, 공식적인 공방으로 선거에 임했으면 좋겠다. 낯뜨거워 못 보겠다.

‘지난 정권’ ‘죽은 권력’ 심판하겠다는 건 유사 이래 처음 보았다. 비록 젊은 날 한때나마 지녔던 뜨거운 신념을 생각해서라도

“김문수 후보, 좀 쿨하면 안되겠니?” 

 

유시춘 / 작가, 전 국가인권위원


원문 주소 -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4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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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A급 찬동인사 46명 선정

시사이야기|2009. 12. 2. 01:19
4대강 사업 A급 찬동인사 46명 선정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11월 30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개최한 '4대강 사업 찬동인사 조사 보고회'를 통해 '4대강 사업 A급 찬동인사' 46명의 명단을  정치권 14명, 행정관료 14명, 전문가 16명, 사회인사 2명 등 도합 46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이들의 문제 발언을 조목조목 공개했다.

교수모임과 환경연은 한국언론재단 뉴스검색 사이트인 카인즈(www.kinds.or.kr)와 포털사이트에서 '운하' '4대강'을 각각 키워드로 입력한 후 4대강 사업이나 운하사업에 찬동 발언을 한 인사들의 명단을 A, B, C등급으로 정리했으며, 찬동발언을 한 사람의 사회적 영향도나 발언횟수 등 항목을 기준으로 명단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공개한  '4대강 사업 A급 찬동인사' 46명의 명단은....

정치인 중에서 이명박(대통령) 김관용(경북도지사) 김문수(경기도지사) 김범일(대구시장) 김태호(경남도지사) 박승환(한국환경공단이사장) 박준영(전라남도지사) 박희태(전 한나라당 대표) 송광호(한나라당 국회의원) 오세훈(서울시장) 이재오(국가권익위원장) 장광근(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두언(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몽준(한나라당 대표) 등이 꼽혔다.

행정관료 중에서는 권도엽(국토해양부 제1차관) 김희국(4대강살리기추진본부 부본부장) 안시권(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정책총괄팀장) 윤증현(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청와대 정책실장) 이만의(환경부장관) 이병욱(환경부 차관) 장석효(전 운하TF팀장) 정운찬(국무총리) 정종환(국토해양부장관) 최용철(한강유역환경청장) 추부길(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한상준(전주지방환경청장) 한승수(전 국무총리) 등이 선정됐다.

전문가 중에서는 곽승준(고려대 교수 겸 미래기획위원장) 권기창(경북도립대 교수) 김계현(인하대 교수) 박석순(이화여대 교수) 박양호(국토연구원 원장) 박재광(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박태주(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심명필(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 유우익(서울대교수,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건무(문화재청장) 이상호(세종대 교수) 전택수(한국중앙연구원 교수) 정동양(한국교원대 교수) 조용주(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 조원철(연세대 교수) 주명건(세종연구원 원장)이 선정됐다.

기타 사회인사로는 권홍사(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회장) 김진홍(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선정됐다.

명단 선정 이유와 관련, "지금까지 국책사업 풍토라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젠 시민들이 강을 망치는 사업에 참여하고 찬동한 인사를 기록할 것"이라며 추후 4대강 사업이 막대한 피해를 불러올 경우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다음 달 중 4대강 사업 추진인사 리스트 및 추가 찬동인사를 선정해 발표할 것"이라며 "지방선거나 총선, 대선 등 중요한 시기마다 리스트를 지속적으로 재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여, 간접적으로 낙선운동 자료로 삼을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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