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 해당하는 글 2

뼈에 새긴 그 이름 노무현

시사이야기|2010. 5. 8. 10:00

뼈에 새긴 그 이름 노무현
 

「뼈에 새긴 그 이름」 시,낭송: 이원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5.16 5.18 그리고 5.23.... 
그 어떤 날이 어떠하던 간에 논쟁은 거두절미하더라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오월는 참 파란 만장한 날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2004년 무렵이었던 같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주 드나드는 서점 한켠에서...
 그 한편의 시를 읽고 그 감동으로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시를 읽고 결코 그러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시를 아마 뼈에 새기고 있을만큼 골백번 읽고 읽었죠. 

5월 8일 추모콘서트가 있다는 [노하우]에서 글을 읽던 중....
낯익은 아니, 뼈에 새긴 그 시인님의 추모시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도 바보를 사랑한 분이었구나' 



이원규....
그에 대한 일면식도 자세한 이력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뼈에 새긴 그 이름' 그의 시를 접한 지  6년여만에
 그도 '뼈에 새긴 이름' 중에 
우리가 존경하는 '바보'가 있음을 알고야 말았다.


  2010/05/08 - 뼈에 새긴 이름 '노무현'을 추억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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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께서 열반하셨습니다

시사이야기|2010. 3. 13. 07:21

▶◀ 법정스님께서 열반하셨습니다


무소유(無所有)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


잔설의 나뭇가지에도 매화는 언 몸을 녹인 후 꽃을 피우건만,
님께서는 봄빛에 눈녹아 사라지듯 그렇게 조용히 가십니까?
하늘에서 좋은 벗들 만나서 이 땅의 중생들을 굽어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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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은 불교계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선사의 문하에 입산 출가 한 이후 수도 정진을 통해 많은 책을 쓰셨습니다.  일반 대중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책들이 많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천주교 김수환추기경님과도 이해인 수녀님과도 친구가 되셨었지요.

입적하신날 조계종에서는 대종사에 추서되셨습니다
법정스님의 마지막 남긴 말씀은

"사리 찾으려 하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고 관과 수의도 많은 사람 수고만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 하지 말라"

13일 전남 송광사에서 다비식만거행

김수환 추기경 생전에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미리 써 논 유언은

"내 육신을 버린 후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 그리고
내 생애에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래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삼가 엎드려 극락왕생하시라고 고합니다. 막걸리 잔 올리고 소생도 음복하였습니다.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겁니다.-무소유  본문 중에서-"

법정스님은 많은 책을 집필하셨지만, 그 중에서도 1999년에 발행된 ‘무소유’라는 책이 어느 책보다 값진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주일 전에 법정스님이 위증 하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정스님을 평소 존경해왔던 네티즌들의 격려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병도 무소유 하시길 바랍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미리 쓰는 유서'라는 꼭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셨습니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그리고 내 생애에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데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지난 해에 이어 종교계를 대표하는  두 분이 새로운 길을 떠나셨습니다.그 길이 이승 넘어 새로운 길인지,
다시 태어남의 길인지 끝모를 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해인수녀님이 법정스님께 보낸편지]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법정스님은.......

본명 박재철.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海南)에서 태어났다. 1956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한 뒤, 같은 해 통영 미래사(彌來寺)에서 당대의 고승인 효봉(曉峰)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같은 해 7월 사미계(沙彌戒)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승려 자운(慈雲)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明峰)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였고, 《불교신문》 편집국장·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가, 2003년 12월 회주 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 현재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었다.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文名)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텅빈 충만》《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수)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법구경)》 《인연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법정스님 추모사이트 바로가기 http://www.beopjung.net/
법정스님의 주요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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