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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후보 단일화에 대한 행간 읽기

시사이야기|2011. 4. 5. 03:38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Strumbling toward Justice)'는 두 달 전에 읽었던 리 호이나키의 책 제목에서 빌려온거야. 개인적으로 추천 도서다.)

시민단체가 내놓은 방안대로 하면 이번 야권후보 단일화는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한번 보자.

- 강원도지사 : 민주당 최문순
- 분당을 국회의원 : 민주당 손학규
- 울산 동구청장 : 민주노동당 김종훈
- 울산 중구청장 : 진보신당 황순정
- 전남 순천 국회의원 : 민주노동당 김선동
-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 민주당 곽진업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나몰라라하고 발을 빼는 이유가 보이지? 민주당도 불만없는거구. 참여당만 쏙 빼놨다. 그것도 김해을 경선방식을 꼬을대로 꼬아서 절대로 참여당이 승리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여론조사

사실 돈 많이 안들이고 여론조사해도 민주당이 우세하다고 그러거든? 그나마 여론조사 기관이 민주당과 가까운 인사라고 한다. 좋아. 신경 안쓰겠다 이거야. 그리고 여론조사도 얼마나 베베꼬아 놨는지 알아? 적합도 조사에, 경쟁력 조사를 섞어놨어. 보통은 적합도 조사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야권 단일화 후보로 누가 적당한가?' 이렇게 물어보면 끝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경쟁력도 넣었다. '이봉수 vs 김태호', '곽진업 vs 김태호'를 물어보고 그 차이를 알아보는 거다. 사실 이거 조사하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어? 어쨌든 좋다 이거지. 경기도지사 선거때도 했었으니까 안받을 이유없어. 그래서 받았어.

현장투표

근데 위에서 말한 여론조사로도 불안한 모양이지? 2010년 경기도지사 경선처럼 될까봐 걱정돼? 정말이지 기적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까봐 걱정돼? 좋다 이거야. 현장투표도 받아주겠다 이거지.

참여당이 뭐하는지도 모르는 유권자가 많은 상황에서, 그래도 김해을에서 야당 조직은 민주당이 강하잖아. 그래서 현장투표를 하면 여론조사에서 혹시라도 일어날 '기적'을 '확실하게' 막아낼 수 있으니까. 좋아. 참여당 입장에서 졸라 불리하지만 '야권 연대'라는 '대의' 때문에 받아줬어. 현장투표 하겠다고...

인구비례 필요없다?

이 정도 받아줬으면 '인구비례' 이거라도 받아줘야 하는거 아냐? 통계에서도 표본이 제대로 적용돼야 통계로 가치를 인정해준다. 국민참여경선 방식을 하겠다는 것은 김해을 유권자의 표심을 알아보고 후보자를 선출하겠다는 거 아닌가? 그 표심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구비례를 지켜야 당연한거 아닌가? 이건 기본적인 원칙도 뭉개버리겠다는거 아닌가?

경선인단 숫자도 그래. 민주당이 요구하는 게 4천명이잖아. 솔직히 이런 예선전에 그렇게 많은 숫자를 동원하는 이유는 대체 뭐지?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민주당이 낫기 때문이잖아. 근데 이것도 받아주겠다고. 다 받아줄테니 '인구비례' 이것만 받아달라고.

한번 눈이 있으면, 생각이 있으면 보라고. 참여당 입장에서 '기적'에, '또 다시 기적'에, '정말 말도 안되는 기적'이 세번 일어나야 하는 게임 규칙을 만들어놨어. 이게 말이 돼? 이런 말도 안되는 게임규칙을 못받아들이겠다는 게 그렇게도 나쁜 짓이야?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정의가 뭐야? 강한 놈이 약한 놈 밟고 있으면, 그거 시정해주는 게 정의 아니야? 그게 우리가 그렇게 외쳤던 '원칙과 상식' 아니야?

게임 규칙이 공정해야 승부가 끝나도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는거야. 게임 룰이 엉망진창이고, 정의고 나발이고, 원칙과 상식이고 나발이라고 하면....노빠 외쳤던 인간들 입이 있으면 한번 말해봐. 이게 니들이 존경했던 노무현의 방식이야? 노무현의 정의야?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이야?

복잡한 여론조사 받아주겠다고. 현장투표도 받아주겠다고. 그러면 우리 인간적으로 인구비례 정도는 참여당 의견 받아주면 안돼? 협상이 뭐야? '주고 받는 게' 협상 아니야? 참여당이 받은게 뭐가 있어? 참여당이 주장해서 받아들여진게 뭐가 있어?

약한 놈 무릎 꿇리는 게 협상이야? 이런 개떡같은 게임규칙을 내놓은 시민단체는 뭐하는 인간들인데? 민주화 운동했던 사람들끼리 동창회 하는거야? 끼리끼리 판 만들어놓고 사기도박하겠다는 게 정의야? 노빠를 자처했으면서, 정의를 시궁창에 쳐박고, 원칙과 상식 따위를 내동댕이치는 현실에 '악' 소리 좀 지르는 참여당이 그렇게도 못마땅해? 그냥 무릎 꿇으라고? 이게 니들이 존경했던 노무현의 길이었어? 진짜 맞아?

한때 같은 길을 걸었던 친구들이, 이젠 나의 반대편에 서서 참여당을 욕보이고, 유시민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면서....마음이 착잡했어.

정의를 향하는 길은 직선이 아닐거야. 누구나 잘못된 길을 걸어갈 수 있고,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으로 다른 길을 갈 수 있어. 걷는 방향이 정의를 향한 길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지금 우리가 다른 길을 걷겠지만,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다시 만나겠지. 물론 가는 방향이 다르다면 만날 수 없겠지만....

삶에 진실하자. 힘의 논리에 저항했던 역사가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였다고 나는 믿어. 그래서 나는 지금 '공정을 가장한 편파적인 게임규칙'에 맞서 싸우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진보라고 믿어. 불공정한 게임규칙에 시달렸던,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이 이렇게 힘의 논리, 패권의 논리를 휘두르면서 약자를 무릎 꿇리려는 것은 절대 '정의'도 아니고, '원칙과 상식'도 아니라고 생각해...

유시민이 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낭송했는지 가슴 깊숙히 울림이 왔어. 다른 길을 선택한 친구들에게 이 시를 다시 보낸다. 너희들이 선택한 그 길이 '아름다운 길'인지, '더러운 길'인지 모르겠지만, 부디 역사 위에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우리가 내딛는 걸음은 아직 힘든 걸음이야. 걸음마도 제대로 못배웠고, 앞에 놓인 길은 울퉁불퉁 자갈길이야. 그러나 정의를 향하는 길은 직선이 아니라 언제나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해서 비틀거리며 갈 수밖에 없을거야.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도 탓하지 않고 담담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갈거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적 운명엔 복종하겠지만, 어떻게든 싸워서 극복이 가능한 운명에는 불굴의 용기와 의지를 갖고 맞서 싸워 나갈거야. 절대 무릎꿇지 않을거야.


얼굴 한번 본 적 없어도 함께 생각을 나누었던, 그러나 이제는 다른 길을 선택한 나의 친구들에게...

가지 않는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오랫동안 서서
풀숲으로 굽어드는 길을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많이 나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으니까
걸어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 길을 걸으면 결국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고 간 발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과 맞닿아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먼 훗날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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