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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워인터뷰 박원순 편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가 자신의 경력이 서울대 법대가 아니고 사회계열이라고 정정하는 2006년 8월 12일자 KBS 파워인터뷰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재주목받고 있다.
보수진영과 나경원 후보 캠프에서 서울대 법대라고 소개하는 2월 백지연씨의 tvN방송 인터뷰 동영상으로 집중포화를 퍼붓자 네티즌들이 이같은 동영상을 찾아낸 것이다.
나 후보 선대위 안형환 대변인은 “왜 서울대 법대를 나오지 않았고 사회계열을 다니다가 제적됐는지를 밝히지 않은 것이냐”며 “박원순 후보는 '애정남'(애매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이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안 대변인은 하버드대 허위 경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으며 ‘안상수 보온병 포탄’ 논란 때 “방송사 기자들이 포즈를 취해달라고 한 것”이라며 ‘방송조작’설을 주장해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박 후보의 인생사를 조명한 3분 41초짜리 ‘KBS파워인터뷰’ 동영상에서 3분 1초경 이금희 아나운서는 “시인을 꿈꾸던 소년이 엘리트 코스라고 하는 서울 법대 입학을 했으니 그 과정, 입학 1달만에 시위 참여했다가 제적된 것이니 주변의 낙담이 어땠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후보가 “서울대 법대라고 소개하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소개에 “그때는 법대는 아직 아니고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이었다”고 정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박 후보는 이날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방송 영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저쪽에서는 백지연씨의 대담방송에 백지연씨 본인이 서울법대 입학하고 이렇게 쭉 얘기를 하신 것을 제가 ‘예’ 라고 대답해서 본인이 그렇게 또 했던 것 아니냐고 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후보는 “또 한편으로는 KBS의 <파워인터뷰>라는 방송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서울법대 입학해서 바로 제적되지 않았느냐고 물어서 제가 그 당시에는 서울법대가 아니고 사회계열로서 아직 서울법대 진입 전이었다고 분명히 시정했던 것도 있다”고 밝혔다.
또 출간된 책의 경력 소개에 대해서도 박 후보는 “제가 낸 책이 40여 권 되는데 그 중에 몇 권의 책에 그렇게 나와 있는 거 사실이다”며 “제대로 제가 챙기지 못한 것은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또 나머지 책에는 다 본래 사회계열이라고 하는 표시가 분명히 돼 있다”고 그는 의도적인 허위 학력 기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그 후라도 제가 그것을 시정하지 않았다면 그건 제 부주의였다”며 “그런데 고의로 그랬다면 모든 책에 그렇게 썼고 또 계속 썼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를 해주시면 그렇게 쓰여졌던 것은 제 부주의고 불찰이고 적어도 고의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트위터 매체 ‘용가리통뼈뉴스’는 “(트위터러가) 직접 찾아낸 영상입니다. KBS가 말하는 박원순 총 정리편. 낙선운동, 입법운동, 그리고 서울 법대 논란까지 종결. 서울 법대 입학했다는 사회자의 말에 사회계열이라고 정정해주는 장면 포함. KBS파워 인터뷰 영상”이라고 소개했다. ‘용가리통뼈뉴스’는 “영상 찾아낸 분은 @tomy_hj님이십니다”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호 MBC 기자는 “대박!”이라고 알티했고 영화배우 박중훈씨도 “그렇군요”라며 관심을 보이며 추천했다.
트위터러들은 “논란 끝!”, “중요한 영상” 등의 반응을 보이며 해당 영상을 무한알티하고 있다.
아이폰4S = iPhone For Steve’ ----- “애플이 중요한 시기에 전세계인이 기다리던 ‘아이폰5’를 세상에 내놓지 못한 이유가 바로 스티브 잡스를 위했기 때문이다."
가장 혁신적인 기능은 '시어리(Siri)'라는 음성인식 기반의 개인비서 서비스다. 아이폰4S에서는 말로 명령하면 폰이 알아듣고 그대로 수행한다.
아이폰4S부터 적용되는 또 다른 혁신적 기능은 '아이클라우드'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다. 지난 6월 개발자 콘퍼런스 때 처음 공개해 주목 받았고 이번에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아이클라우드는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터치,맥북 등 애플 제품끼리 음악,사진,문서 등의 콘텐츠를 자동으로 동기화하는 기능이다. 아이폰4S는 아이패드2에 들어간 듀얼코어 A5 칩을 내장해 그래픽 성능이 7배 빨라졌다. 앱을 열고 브라우징을 하고 게임 등을 즐길 때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A5 칩은 전력효율이 높아 아이폰4S의 배터리 수명도 길어졌다. 음성통화는 8시간,브라우징은 6시간,음악감상은 40시간까지 가능하다. 다운로드 속도는 14.4Mbps(초당 14.4메가비트 전송)로 2배 빨라졌다.
카메라와 캠코더 성능도 좋아졌다. 8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하고 있어 화소가 아이폰4보다 60% 많아졌고 동영상은 1080픽셀 고화질 (HD) 촬영이 가능하다. 필 실러 애플 부사장은 "지금까지 나온 사진 카메라로는 최고이고 동영상 카메라로도 최고"라고 강조했다.
'혁신의 아이콘(icon)'이자 이 시대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받아온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5일(현지시간) 영면했다. 향년 56세.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입양아, 대학 중퇴와 애플 창업,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PC) 개발, 애플서 축출과 복귀, 희귀암 발병과 투병, 스마트폰, 태블릿PC 아이폰과 아이패드 출시로 디지털시대 새 라이프스타일 창조, 화려한 프레젠테이션(PT) 등 숱한 화제와 함께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파산지경에 이른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IT기업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생을 마감하며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의 신화로 남게 됐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이 6일 오전 8시30분께 '스티브 잡스 사망'이란 속보 기사를 올린 이후 ABC뉴스, AFP통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영국 로이터통신 등이 관련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티브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부모님의 집 창고에서 애플컴퓨터를 창업했다. 그는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 시리즈를 개발했고 지난 8월 건강 악화로 애플의 CEO에서 사임했다.
잡스는 2003년 췌장암 섬세포암을 앓다가 수술을 받고 암세포를 없앤 후 2009년 간 이식 치료를 받았으나 암이 재발해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에는 3번째로 병가를 내고 애플의 경영을 팀 쿡에게 맡겼다.
다음은 애플 이사회의 성명 전문.
We are deeply saddened to announce that Steve Jobs passed away today.
Steve's brilliance, passion and energy were the source of countless innovations that enrich and improve all of our lives.
The world is immeasurably better because of Steve.
His greatest love was for his wife, Laurene, and his family.
Our hearts go out to them and to all who were touched by his extraordinary gifts.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그의 탁월함, 열정과 에너지는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든 수많은 혁신의 원천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아내 로렌과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과 그에게 특별한 혜택을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스탠포드대 연설문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 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워줬습니다.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만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엄지들고 차를 유혹해서 빌려타며 여행하는 것/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원문은 아래...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에코노베이션센터’가 주최하는 ‘앱 개발 대회’ 1회 대회에서 아이폰 어플 ‘SongMaker’로 팀부분 3등을 수상한 강태구 튠어라운드 대표는 “어플을 개발하던 중 대회 소식을 듣고 참가했고, 수상 이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SongMaker’는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유료 다운로드 1만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강 대표는 “대기업들이 수익 배분 등 조건 없이 여는 경시대회는 어플 개발자들과 개발 업체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대회에 자극을 받아 좋은 아이디어와 개발자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이폰4' 혹은 '아이폰HD' 오는 7월 국내 판매
애플 아이폰의 차세대 모델인 '아이폰 4세대(4G)'가 공개됐다. 아이폰4, 7월 KT통해 국내 출시 예정 - 3GS보다 얇으면서도 배터리는 강력 애플의 차세대 아이폰 `아이폰4`가 오는 7월 KT를 통해 국내에 출시된다.
아래 글은 딴지일보의 파토[딴지 논설위원]님의 글입니다.
혼자 읽기엔 너무 아까워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아이폰 대신 찾아온 노무현 (딴지일보 / 파토 / 2009-12-01)
어제 아침에 갑자기 우체국에서 문자가 왔다. 택배 배달 예정이란다.
많이들 아셨겠지만 어제 아침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아이폰 예약 물량이 배달되기 시작한 그 시점이다. 트위터에서도 다들 아이폰이 왔네 안 왔네, 송장번호를 넣어도 배송추적이 되네 안되네 시끌벅적했다(참고로 요즘 트위터 많이 하니 들어와서 patoworld 팔로우하시라. 질문에 신속히 대답해 드리고 말상대 서비스도 한다)
근데 이상한 건 난 분명히 아이폰을 주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옴니아 1은 1년 가까이 각종 취재와 집필, 급한 메일 송수신에 큰 도움을 주고 있고, 비록 두살배기 아기에게 던져지고 밟혀 왔지만 여전히 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아이폰이 탐이 나긴 하지만 이걸 버리고 그걸 살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에서 딴 거 뭘 산 것도 없었다.
이 시점에서 간교한 필자의 머리를 스친 생각은, 혹시라도 어떤 광팬 독자께서 내게 아이폰을 사서 보내 준 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머 누구처럼 생리혈서까진 안 보낸다 한들…
마, 꿈도 야무지지 생각해보면 독자가 내 집 주소를 알 리도 없고 안다 한들 수십만 원이나 하는 아이폰을 그냥 보내줄 리도 만무하지만, 세상에는 간혹 스토커라는 이름의 기적도 존재하지 않는가 말이다(물론 맨날 이런 생각 하고 사는 건 아니다. 트위터가 웬수다)
그렇게 택배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일파만파로 증폭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체부 아저씨가 벨을 눌렀다. 그리고는 그가 전해준 물건은 바로 아래의 것이었다.
그랬지.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노무현 재단에 후원 신청하면 이걸 보내 준다고 했었다. 그때 물건 안 받는 옵션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책과 쌀이 욕심 나서, 아니 그보다는 뭔가 기념으로라도 받고 싶었다. 그게 꽤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이제 배달이 온 거다. 하필 아이폰 배달하는 날과 같은 날, 같은 우체국 택배로.
우체국 오늘 꽤 바빴겠다.
여하튼 어이없게도 진짜로 아이폰이 아닐까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던 필자, 순간 약간의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는 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머 굳이 노무현 재단 기념품이라는 점이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이건 어차피 언젠가 올 물건이고 아이폰은 만약 온다면 일종의 횡재를 하는 것이라는 차이였을 뿐…
상자를 열어봤다. 안에는 다음과 같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 봉하쌀
오리 및 우렁이 농법으로 지었다는 그 무공해 쌀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손길이 닿은 마지막 쌀이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서거 직후 취재를 갔을 때 그 기나긴 조문행렬의 옆에서 익어가던 바로 그 쌀이다.
이걸 어떻게 먹냐. 밥을 지으면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차라리 불쌍한 사람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양이 너무 적다.
근데 이상하게도 표지의 글씨가 자꾸 봉하 우렁이 쌀이 아니라 눈물의 봉하쌀로 읽힌다. 에유, 난 여전히 맛이 가 있구나.
※ 책 ‘성공과 좌절’
이런,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 책도 사놓고 오늘까지 못 읽은 난데. 그 책은 딱 세 페이지 보고는 덮어 버렸고 여태껏 다시 열지 못하고 있음이다.
그래도 세월이 그동안 좀 지났다고 이 책은 진도를 조금 뽑을 수 있을까. 특성상 치밀한 구성이나 줄거리를 기대할 수 없겠지만 노무현 만년의 고민과 진심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아니겠냐.
※ 증명서
나름 성의 있게 만든 노무현 재단 후원회원 증명서가 들어 있다. 깔끔하고 예쁘게 생겨서 액자라도 해 놓고 싶은 맘도 든다. 그래 머 이런 것도 있어야 후원할 맛이 나기도 하겠다 싶다. 하지만, 자랑스러워 하기에는 내가 내는 돈이 너무 적다. 누구는 매월 몇천만 원 씩 기부도 한다는데 난 꼴랑 월 만원이니.
※ 후원신청서와 스티커 등
3장씩 든 후원신청서는 주변에 누구라도 당장 후원을 시키라는 노골적인 압력이 분명하다. 내 주변에 이걸 내밀 만한 사람 중에 아직 후원 안 하고 있는 넘뇬이 있을까? 아무래도 별로 없지 싶어 이건 독자 열분들께 부탁 드린다. 싫음 말고.
역시 눈에 들어오는 건 스티커. 근데 이걸 어디 붙여야 할까나. 차에 붙이면 떨어질 것 같고, 기타에 붙이자니 무조건 운동권 밴드같이 보일 것 같아 좀 그렇고… 여하튼 궁리 중이다. 스티커는 어딘가에 붙어야 맛인 거니.
이렇게 내용물들을 늘어놓고 바라보고 있지나 올만에 또 울컥한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이 물건들이 어딘지 노무현의 유골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죽은 노무현의 재단에 시시한 돈 몇 푼 보내니 유골 몇 조각 보내 준 것 같은… 아 물론 재단을 폄하하려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내 개인적인 감상이 그랬다는 말이다.
용기를 내서 책을 좀 들여다봤다. 아 씨파, 첫 장부터 유언이다.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본 글귀. 이렇게 건조한 유언 몇 줄 남겨 두고 갈 정도로 세상에 미련이 없었나.
책 전체는 전반적으로 노무현의 노트와 회의록 등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식이다. 제대로 된 회고록이나 ‘저서’는 아니다. 단지 그가 죽기 전에 무엇을 생각했는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말 그대로 성공은 뭐고 좌절은 먼지 스스로의 목소리로 고통스럽게 읊조린 이야기들이다.
이미 몇 번 이야기했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노빠가 아니었다. 외국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사모도 아니었다. 사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았었다. 그러나 노무현 탄핵 때는 누구 못지않게 큰 소리로 반대했고 서거 때도 미친 듯이 분노해서 떠들어댔다.
어찌 보면 그것은 노무현이라는 인간과 관련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가장 양심적이었던 정치인을 완벽하지 않다는 죄로 죽여버린 세상 - 나 자신도 포함된 - 이 너무 야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토양 하에서라면 노무현 같은 정신을 가진 정치인은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최근 노무현에 대한 표적 수사의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거기에 덤으로 이명박의 도곡동 땅 이야기도 나온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이런저런 상념 끝에 결국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아래의 한 대목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략)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몽땅 덮어씌우려는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자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이제 즈음에는 그가 왜 죽어야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다. 죽음으로서 크나큰 슬픔과 절망을 주었지만, 한편 죽음으로써 거대한 희망의 싹을 심어 주었던 것은 아닐까. 결백은 아닐망정 - 본인이 결백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고 나는 이를 존중한다 - 스스로의 좌절과 실패를 군말 없이 목숨과 맞바꿈으로써, 아직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며 말이다.
결국, 생명을 던짐으로써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는 처절한 각성을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고, 그래야만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거다. 그 스스로 자신이라는 상징적, 현실적 장애물을 불태워 버리고 우리에게는 마음껏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한 거란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 책을 보면 노무현은 분명 직접민주제, 혹은 참여민주제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의민주제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투표의 뜻이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와 우리 이후 사람들의 과제일 것입니다’ 라며 나름의 고민을 토로한다.
이것도 저것도 막힌 상황에서는 저항권이라는 것을 행사해왔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별 막힌 것도 없는데, 국민 다수의 여론이나 투표의 결과가 다수 국민의 이익과 서로 어긋나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대통령을 지내지 않았었다면, 혹은 생각할 시간이 더 길게 있었더라면 나는 그가 결국은 직접/참여민주제라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된 대로 그는 더 이상 정치적 논의를 끌고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버렸다. 살아서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음으로써 그 무거운 짐을 이제 남아있는 우리에게 넘겨주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과연 진정한 노무현의 유지가 무엇인지 또 생각하게 된다. 노무현을 반복하는 것, 그가 하려 했던 일을 똑같이 다시 시도하는 것은 그 유지를 잇는 길이 아니다. 그의 이름에 마냥 기대어 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을 기억하되 그를 밟고, 그가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찾아서 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 갈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머 반 농담이긴 하지만,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필자조차도 순간적으로 공짜 아이폰의 망상에 빠져 버리는 게 세상인 것 같다. 별로 필요 없는 반짝거리는 물건은 쉽게 얻으려 하고 꼭 필요한 힘든 길은 자꾸만 피하려고 한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정신을 차릴 수 있고 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와중에 방금 전국공무원노조에서 메일이 왔다. 오늘 새벽 5시 30분 조합 사무실과 서울본부 사무실에 경찰의 압수 수색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200명의 대규모 경찰 병력이 동원되었다. 오늘 낮으로 예정된 기자회견 및 통합노조설립신고서 제출을 6시간 남짓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그와 동시에 철도노조의 압수 수색도 이루어졌단다.
모든 노조를 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파업을 유권해석이 떨어지기도 전에 무조건 불법이라고 밀어붙이는 이 정부. 연예인들이나 앉혀 놓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짜고 친 ‘대통령과의 대화’.
그래도 노무현 때는 ‘국민과의 대화’였다. 이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벌써 발상의 차이가 드러난다. 유인촌의 대동아전쟁 발언처럼 아예 문제의식 자체가 없으니 아닌 척 할 수조차 없는 거다.
참고로 이게 왜 짜고 친 고스톱인지 확인하려면 아래를 보시라.
이런 와중에 4대강에 수십조 쏟아붓고 복지예산 급식예산 삭감하고, 대신 삐까뻔쩍한 4천만 원짜리 최첨단 로봇생선을 강에 띄우겠다는 화려하고도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는 우리의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