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에 해당하는 글 2

  1. 고흐의 편지2008.03.28
  2. 고흐의 편지2008.03.28

고흐의 편지

문학이야기|2008. 3. 28. 06:57
 
고흐의 편지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Dear Theo.....

1874.1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

1879.8.15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냐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1880년 7월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작품에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등이 있다.

국적 네덜란드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
주요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아를의 도개교(跳開橋)》《해바라기》

1853년 3월 30일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 화상점원,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다. 마침내 브뤼셀·헤이그·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언제나 노동자·농민 등 하층민 모습과 주변생활과 풍경을 담았다. 초기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은 이 무렵의 작품이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서 파리에 나온 고흐는 코르몽의 화숙(畵塾)에서 베르나르와 툴루즈 로트레크를 알게 되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 판화에 접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풍(風)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화상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하였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였으며 《아를의 도개교(跳開橋)》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했다.

한편 새로운 예술촌 건설을 꿈꾸고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그곳으로 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하여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해 12월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고흐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마구 그려댔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쳐 파리 근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 찾아간 것은 1890년 5월이었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을 하였다. 그의 유작은 매우 많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풍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의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을 지켜 왔는데,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었다. 그 동안 너는 나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렸고, 나도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렇게 지내지 않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좋을 텐데... 네가 50프랑을 보냈다는 소식이 에텐에서 왔더라. 그래서 그 돈을 받기로 했다. 물론 많이 망설였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내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으니 달리 어쩌겠니. 그래서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보리나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내가 에텐근처에 있기를 원하셨지만, 거절했다. 그렇게 한 것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싫든 좋든 나는 가족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존재, 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겠니? 그래서 멀리 떠나 있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원한다면 나를 그 가운데 하나로 봐도 좋다. (...)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 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그를 막고, 감금하고, 매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창살, 울타리, 벽 등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상상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묻곤 한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1881.11.10~11
이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내 존재를 주저 없이 내던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승산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를 던진다 해도 승산은 아주 희박하지. (...)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1881년 12월 21일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그녀만을 원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여자에게 가고 싶어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느냐고 혼자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 논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내가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비합리적인고 분별 없는 내 성격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빌어먹을 벽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고,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1882년 3월 3일
(...) 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것 솔직히 인정한다.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한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한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지.

1882.5.3~12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게 힘들었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나는 좋은 모델을 가진 덕분에 데생에 진전이 있었다.

1882.7.21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으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2년 9월 3일
너의 변함 없는 도움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요즘은 네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더욱더 내 그림이 활기 있고 진지하고 강령하게 되어 너에게 빨리 기쁨을 주고 싶다. 내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 내 치료법이 너에게도 통하리라 생각하는데, 그건 툭 트인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잘 지낸다. 피곤할 때도 더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식사를 간소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주된 치료법은 그림이다.

1882년 10월 22일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1883년 3월 21~28일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잡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더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집시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에 잼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1883.7.11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황야의 오솔길에 서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 일이다. 히이드로 뒤엎인 갈색의 황야를 좁고 하얀 모래길이 가르지르고, 그 위에 엄격하게 보이는 개성 있는 인물이 서 있는 모습으로. 하늘은 조화롭고 열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을 풍경 속에 서로 팔을 끼고 있는 그림도 그리고

1883.12.15
아버지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의식적으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안에 지저분한 발을 하고 드나들 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 한다. 1884.10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3년 12월17일
언젠가 모베는 "자네가 자네만의 예술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깊이 파고든다면, 자네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년 전 일이다. 요즘 들어 그 말을 자주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바로 그 개가 나 자신이다. 조금 과장된 말인지도 모르지. 사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상황이 극단적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이 표현이 옳다고 믿는다. 본질적인 것만 거론하자면, 어제 편지에서 말한 대로 털 많은 양치기 개는 바로 나 자신이고, 그 동물의 삶이 나의 삶이다. 너에게는 과장된 표현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 말을 취소할 마음은 없다.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자연을 떠난 자는 머릿속이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더 이상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결국 애초에 원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겠지.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1885.4.30
▲고흐의 젊은 시절 사진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1885년 12월 28일

모델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밤새 꽤 바쁘게 일했음이 분명한 모습을 하고 찾아왔다. 인상적이게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샴페인은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슬프게 해요." 그 순간 나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것 같았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쥐어뜯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같은 모델을 놓고 옆모습으로 두 번째 습작을 시작했다. 요즘은 온통 렘브란트와 프란스할스 생각뿐이다. 그들의 그림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한다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양홍색과 코발트색에 푹 빠져 있다. 코발트는 아주 신비로운 색으로, 사물 주변의 분위기를 만들 때 이보다 더 적합한 색은 없지 싶다. 카르민은 포도주의 붉은색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며 포도주처럼 강렬하다. 에메랄드 그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절약이다. 카드뮴색(노란색 계열)도 마찬가지다.

1888.6.18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1888.6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7월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수확>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1888.9.3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888.9.17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너에게 편지를 쓴 후 태양이 비치는 정원 그림을 그리러 나가서 작업을 마쳤다.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새 캔버스를 가지고 나갔고, 그것도 끝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

▲ 고흐가 그린 누드


1888년 9월 8일
우체국에서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을 부치면서, 새 그림 <밤의 카페>의 스케치도 함께 넣었다. 이제 일본판화의 성격을 약간 가미하면 완성될 것이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함으로써, 부드러운 녹색과 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함으로써,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1888.10.24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두 사람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가 이곳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 그걸 찾게 될까? 묵묵히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다.

1889년 1월
생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 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가둔다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리게 내버려둔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 Starry Night


1889.4.30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받아들여줄 병원은 없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나에게 너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런 가책없이 나를 자살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테지. 비겁한 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 했을 테니까. 우리가 계속 사회에 대항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1889.5.2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1889.9.7~8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1890년 5월 4일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느님 맙소사! 1년이 넘도록 참아왔으니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지루함과 슬픔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의 인내심이 극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임시변통에 불과하더라도.

1890년 7월 24일 <마지막 편지>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50프랑 수표 고맙게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너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네 가정의 평화문제라면, 잠시 파란이 있어도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프랑스어나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론 할 때 이런저런 면의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게 그리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지만. 요즘은 온통 그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화가들처럼 잘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으니, 오늘날 화가들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그런데 화가 공동체를 결성하는 게 유용하다고 화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이냐? 하긴, 공동체가 결성되더라도 다른 화가들이 파멸한다면 공동체 역시 파멸하게 될 테지. 너는 그런 경우, 화상들이 인상파 화가들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개인적인 노력은 별소용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여러 가지 일을 겪었는데, 정말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고갱이 브르타뉴 지방에서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그린 다른 그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봉한 것은 도비니의 정원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다시 스케치한 것이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생각해서 그린 작품 중 하나다. 구식으로 이엉을 인 지붕과 비온 후의 광대한 밀밭 정경을 그린 30호 크기 그림 두 점도 대략 스케치했다.

<고호가 보낸 마지막 편지. 테오는 이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빈센트가 자살한 당일까지 지니고 있었던 편지>

너의 염려해 주는 편지와 같이 동봉한 50프랑의 지폐, 고맙다. 갖가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헛수고라 생각해 버렸다. 신사들이 네게 대해 여러 가지로 편의를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너의 가정이 무고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는다. 좋은 경우나 나쁜 경우도 상상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5층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네게나 조에게 얼마나 중노동이 될까 하는 것은 십분 짐작이 간다.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물론 다행이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에 어째서 내가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더욱 머리를 냉정히 하여 장사 이야기라도 할 수 있게 되려면 아직도 아득한 일인 것 같다. 현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고, 이미 그 말을 전했다고 생각되지만, 그 사실에 어느 정도의 공포를 가진 채 자각하고 있었으며,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다른 화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거나 간에 무의식적이나마 실제 장사의 일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틀림없이 우리들은 자기들의 그림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아우야, 이런 말을 언제나 네게 했고, 최선을 다하자고 끊임없이 바라던 내 생각을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전하겠다. 거듭 말하거니와 너는 단지 코로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는 전혀 다르며, 나를 통하여 많은 그림 제작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니까, 비록 네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 관련성 있는 위기에 즈음하여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네게 그 말은 적어도 중요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현지 실존하고 있는 예술가나 과거의 예술가의 그림과 화상과는 지금도 완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렇다. 나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졌으며, 내 이성을 반쯤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너는 화상답지가 않다. 너는 동료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에서 활동한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 1890년 7월 24일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글 출처 : http://www.sunslife.com/bbs/zboard.php?id=4004&no=1644>
 
 
 
Vincent / Don Mclean
 
Stary sta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별이 총총한 밤 파랑, 회색으로 팔레트를 물들이고
여름날, 내 영혼의 어두운 면을 궤뚫는 눈으로 밖을 바라봐요
언덕에 드리운 그림자,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하고
눈처럼 하얀 리넨 캔버스에 미풍과 겨울의 싸늘함을
색깔로 그려내요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 listen now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난 이제 알 것 같아요
온전한 정신은 찾으려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죠
아마도 지금은 귀기울일 거에요

Stary sta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artist's loving hand

별이 총총한 밤 밝게 타오르는 듯 활짝 피어난 꽃과
보랏빛 안개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빈센트의 파아란 눈망울에 비쳐요
곡식이 익는 황금빛의 아침 들판으로 색은 바뀌고,
고통으로 주름진 지친 얼굴은 예술가의 사랑스런 솜씨로
위로 받아요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 listen now

이젠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온전한 정신을 갈구하며 얼마나 괴로워 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귀기울지 않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테죠.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진실했죠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별이 총총한 밤 연인들이 그러듯이
당신도 목숨을 끊어버렸죠 하지만 난 당신께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요 이 세상은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에게 절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 걸...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d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별이 총총한 밤 텅빈 홀에 걸린 초상
이름 모를 벽에 걸린 채 세상을 바라보는
액자도 없는 초상들. 당신이 만난 누더기 옷에
초췌한 이방인처럼 잊을 수가 없어요
아무도 밟지 않는 눈 위에
짓이겨 뭉개진
알간 장미의 은빛 가시도...
And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이젠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온전한 정신을 갈구하며 얼마나 괴로워 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귀기울지 않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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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편지

문학이야기|2008. 3. 28. 06:57
 
고흐의 편지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Dear Theo.....

1874.1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

1879.8.15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냐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1880년 7월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작품에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등이 있다.

국적 네덜란드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
주요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아를의 도개교(跳開橋)》《해바라기》

1853년 3월 30일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 화상점원,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다. 마침내 브뤼셀·헤이그·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언제나 노동자·농민 등 하층민 모습과 주변생활과 풍경을 담았다. 초기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은 이 무렵의 작품이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서 파리에 나온 고흐는 코르몽의 화숙(畵塾)에서 베르나르와 툴루즈 로트레크를 알게 되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 판화에 접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풍(風)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화상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하였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였으며 《아를의 도개교(跳開橋)》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했다.

한편 새로운 예술촌 건설을 꿈꾸고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그곳으로 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하여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해 12월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고흐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마구 그려댔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쳐 파리 근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 찾아간 것은 1890년 5월이었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을 하였다. 그의 유작은 매우 많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풍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의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을 지켜 왔는데,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었다. 그 동안 너는 나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렸고, 나도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렇게 지내지 않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좋을 텐데... 네가 50프랑을 보냈다는 소식이 에텐에서 왔더라. 그래서 그 돈을 받기로 했다. 물론 많이 망설였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내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으니 달리 어쩌겠니. 그래서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보리나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내가 에텐근처에 있기를 원하셨지만, 거절했다. 그렇게 한 것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싫든 좋든 나는 가족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존재, 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겠니? 그래서 멀리 떠나 있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원한다면 나를 그 가운데 하나로 봐도 좋다. (...)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 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그를 막고, 감금하고, 매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창살, 울타리, 벽 등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상상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묻곤 한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1881.11.10~11
이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내 존재를 주저 없이 내던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승산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를 던진다 해도 승산은 아주 희박하지. (...)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1881년 12월 21일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그녀만을 원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여자에게 가고 싶어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느냐고 혼자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 논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내가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비합리적인고 분별 없는 내 성격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빌어먹을 벽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고,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1882년 3월 3일
(...) 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것 솔직히 인정한다.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한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한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지.

1882.5.3~12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게 힘들었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나는 좋은 모델을 가진 덕분에 데생에 진전이 있었다.

1882.7.21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으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2년 9월 3일
너의 변함 없는 도움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요즘은 네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더욱더 내 그림이 활기 있고 진지하고 강령하게 되어 너에게 빨리 기쁨을 주고 싶다. 내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 내 치료법이 너에게도 통하리라 생각하는데, 그건 툭 트인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잘 지낸다. 피곤할 때도 더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식사를 간소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주된 치료법은 그림이다.

1882년 10월 22일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1883년 3월 21~28일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잡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더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집시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에 잼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1883.7.11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황야의 오솔길에 서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 일이다. 히이드로 뒤엎인 갈색의 황야를 좁고 하얀 모래길이 가르지르고, 그 위에 엄격하게 보이는 개성 있는 인물이 서 있는 모습으로. 하늘은 조화롭고 열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을 풍경 속에 서로 팔을 끼고 있는 그림도 그리고

1883.12.15
아버지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의식적으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안에 지저분한 발을 하고 드나들 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 한다. 1884.10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3년 12월17일
언젠가 모베는 "자네가 자네만의 예술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깊이 파고든다면, 자네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년 전 일이다. 요즘 들어 그 말을 자주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바로 그 개가 나 자신이다. 조금 과장된 말인지도 모르지. 사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상황이 극단적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이 표현이 옳다고 믿는다. 본질적인 것만 거론하자면, 어제 편지에서 말한 대로 털 많은 양치기 개는 바로 나 자신이고, 그 동물의 삶이 나의 삶이다. 너에게는 과장된 표현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 말을 취소할 마음은 없다.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자연을 떠난 자는 머릿속이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더 이상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결국 애초에 원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겠지.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1885.4.30
▲고흐의 젊은 시절 사진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1885년 12월 28일

모델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밤새 꽤 바쁘게 일했음이 분명한 모습을 하고 찾아왔다. 인상적이게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샴페인은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슬프게 해요." 그 순간 나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것 같았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쥐어뜯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같은 모델을 놓고 옆모습으로 두 번째 습작을 시작했다. 요즘은 온통 렘브란트와 프란스할스 생각뿐이다. 그들의 그림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한다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양홍색과 코발트색에 푹 빠져 있다. 코발트는 아주 신비로운 색으로, 사물 주변의 분위기를 만들 때 이보다 더 적합한 색은 없지 싶다. 카르민은 포도주의 붉은색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며 포도주처럼 강렬하다. 에메랄드 그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절약이다. 카드뮴색(노란색 계열)도 마찬가지다.

1888.6.18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1888.6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7월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수확>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1888.9.3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888.9.17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너에게 편지를 쓴 후 태양이 비치는 정원 그림을 그리러 나가서 작업을 마쳤다.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새 캔버스를 가지고 나갔고, 그것도 끝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

▲ 고흐가 그린 누드


1888년 9월 8일
우체국에서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을 부치면서, 새 그림 <밤의 카페>의 스케치도 함께 넣었다. 이제 일본판화의 성격을 약간 가미하면 완성될 것이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함으로써, 부드러운 녹색과 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함으로써,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1888.10.24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두 사람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가 이곳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 그걸 찾게 될까? 묵묵히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다.

1889년 1월
생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 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가둔다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리게 내버려둔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 Starry Night


1889.4.30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받아들여줄 병원은 없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나에게 너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런 가책없이 나를 자살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테지. 비겁한 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 했을 테니까. 우리가 계속 사회에 대항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1889.5.2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1889.9.7~8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1890년 5월 4일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느님 맙소사! 1년이 넘도록 참아왔으니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지루함과 슬픔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의 인내심이 극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임시변통에 불과하더라도.

1890년 7월 24일 <마지막 편지>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50프랑 수표 고맙게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너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네 가정의 평화문제라면, 잠시 파란이 있어도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프랑스어나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론 할 때 이런저런 면의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게 그리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지만. 요즘은 온통 그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화가들처럼 잘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으니, 오늘날 화가들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그런데 화가 공동체를 결성하는 게 유용하다고 화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이냐? 하긴, 공동체가 결성되더라도 다른 화가들이 파멸한다면 공동체 역시 파멸하게 될 테지. 너는 그런 경우, 화상들이 인상파 화가들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개인적인 노력은 별소용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여러 가지 일을 겪었는데, 정말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고갱이 브르타뉴 지방에서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그린 다른 그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봉한 것은 도비니의 정원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다시 스케치한 것이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생각해서 그린 작품 중 하나다. 구식으로 이엉을 인 지붕과 비온 후의 광대한 밀밭 정경을 그린 30호 크기 그림 두 점도 대략 스케치했다.

<고호가 보낸 마지막 편지. 테오는 이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빈센트가 자살한 당일까지 지니고 있었던 편지>

너의 염려해 주는 편지와 같이 동봉한 50프랑의 지폐, 고맙다. 갖가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헛수고라 생각해 버렸다. 신사들이 네게 대해 여러 가지로 편의를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너의 가정이 무고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는다. 좋은 경우나 나쁜 경우도 상상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5층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네게나 조에게 얼마나 중노동이 될까 하는 것은 십분 짐작이 간다.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물론 다행이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에 어째서 내가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더욱 머리를 냉정히 하여 장사 이야기라도 할 수 있게 되려면 아직도 아득한 일인 것 같다. 현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고, 이미 그 말을 전했다고 생각되지만, 그 사실에 어느 정도의 공포를 가진 채 자각하고 있었으며,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다른 화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거나 간에 무의식적이나마 실제 장사의 일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틀림없이 우리들은 자기들의 그림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아우야, 이런 말을 언제나 네게 했고, 최선을 다하자고 끊임없이 바라던 내 생각을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전하겠다. 거듭 말하거니와 너는 단지 코로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는 전혀 다르며, 나를 통하여 많은 그림 제작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니까, 비록 네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 관련성 있는 위기에 즈음하여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네게 그 말은 적어도 중요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현지 실존하고 있는 예술가나 과거의 예술가의 그림과 화상과는 지금도 완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렇다. 나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졌으며, 내 이성을 반쯤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너는 화상답지가 않다. 너는 동료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에서 활동한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 1890년 7월 24일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글 출처 : http://www.sunslife.com/bbs/zboard.php?id=4004&no=1644>
 
 
 
Vincent / Don Mclean
 
Stary sta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별이 총총한 밤 파랑, 회색으로 팔레트를 물들이고
여름날, 내 영혼의 어두운 면을 궤뚫는 눈으로 밖을 바라봐요
언덕에 드리운 그림자,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하고
눈처럼 하얀 리넨 캔버스에 미풍과 겨울의 싸늘함을
색깔로 그려내요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 listen now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난 이제 알 것 같아요
온전한 정신은 찾으려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죠
아마도 지금은 귀기울일 거에요

Stary sta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artist's loving hand

별이 총총한 밤 밝게 타오르는 듯 활짝 피어난 꽃과
보랏빛 안개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빈센트의 파아란 눈망울에 비쳐요
곡식이 익는 황금빛의 아침 들판으로 색은 바뀌고,
고통으로 주름진 지친 얼굴은 예술가의 사랑스런 솜씨로
위로 받아요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 listen now

이젠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온전한 정신을 갈구하며 얼마나 괴로워 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귀기울지 않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테죠.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진실했죠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별이 총총한 밤 연인들이 그러듯이
당신도 목숨을 끊어버렸죠 하지만 난 당신께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요 이 세상은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에게 절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 걸...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d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별이 총총한 밤 텅빈 홀에 걸린 초상
이름 모를 벽에 걸린 채 세상을 바라보는
액자도 없는 초상들. 당신이 만난 누더기 옷에
초췌한 이방인처럼 잊을 수가 없어요
아무도 밟지 않는 눈 위에
짓이겨 뭉개진
알간 장미의 은빛 가시도...
And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이젠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온전한 정신을 갈구하며 얼마나 괴로워 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귀기울지 않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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