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후보·홍준표 대표에게 보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충고

시사이야기|2011. 10. 20. 02:38

“선거전략은 정정당당해야 한다”
- 나경원 후보·홍준표 대표에게 보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충고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졸렬한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봉하 사저를 ‘아방궁’이라며 맹비난했던 두 사람.

나경원 후보는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자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사저 문제는 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다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며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봉하 사저가 ‘아방궁’인지 아닌지, 비판받을 내용이 있다면 무엇인지 밝히라는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

홍준표 대표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아방궁’ 공격은 “정치적 비유”라고 변명하더니 “(2002년 대선은) 대한민국 선거사에 가장 악랄한 네거티브 선거, 노무현 정부가 정권을 탈취해간 것”이라고 막말을 했다.

‘정권탈취’라니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1200만명이 넘는다. 홍준표 대표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대한민국 유권자 절반을 ‘반란죄’로 기소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법치를 배운 법조인 출신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충고를 들려주고자 한다. 2007년 9월 11일 노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불법선거운동을 고소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근거 없이 ‘청와대 선거개입 공작설’을 제기하며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벌였다. 나경원 후보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대변인이었다. 그리고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막말정치 등 범법과 반칙을 동원한 네거티브 전략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노 대통령은 당시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고, 후보도 법 위에 있지 않고, 선거도 법 위에 있지 않다. 선거전략은 정정당당해야 한다”면서 “원칙이 이기는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자신들의 선거 승리를 위해 남의 가치를 아무 근거 없이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원칙이 이기는 선거 결과로 수립된 정부여야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고 역사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후보라도 원칙을 짓밟으면서 정권을 잡아서는 국가발전에도, 국민의 행복에도, 역사발전에도 기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에 불리하더라도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 원칙과 원칙적 가치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리한 상황도 감수했던 그의 ‘충고’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홍준표 대표에게 다시 한 번 전해주고 싶다.

다음은 2007년 9월 11일 노 대통령 기자회견 중 관련 대목이다.

“정치도, 선거도, 후보도 법 위에 있지 않다…범법행위 용납해선 안돼”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치풍토 하나가 정치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성역인가? 우리 국민들이나 여러분이나 ‘정치적 행위는 법을 위반해도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는가? 이 점에 대해서 굉장히 혼란스럽고 실망스럽습니다.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해서 범법행위를 용납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논리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고, 따라서 후보도 법 위에 있지 않고, 선거도 법 위에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법에 따라서, 법의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거전략은 정정당당해야 됩니다. 그들 스스로 한 일을 생각지 않고 정치적 효과만 가지고 얘기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참여정부는 법치주의, 특권 없는 사회, 그리고 투명한 사회, 투명한 정권, 공작하지 않는 정권이 핵심가치입니다. ‘공작하지 않는 정권’이라는 이 사실이 저와 참여정부의 핵심가치입니다. 이 핵심가치를 아무 근거도 없이 공격했지 않았습니까?

‘청와대가 공작해서 무슨 무슨 일이, 선거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근거를 내놓으면 전혀 처벌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거가 없으면 그건 불법적인 선거운동입니다.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이기냐보다 원칙이 승리하는 선거가 돼야”

저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어느 편이 이기느냐, 즉 모든 사람들이 ‘어느 편이 이기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편이 이기는 것보다 원칙이 이기는 선거라야 그 선거 결과로 수립된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고 역사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유능한 또 어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가 원칙을 존중하지 않고 원칙을 짓밟으면서 정권을 잡아서는 국가발전에도 국민의 행복에도 더욱이 역사발전에도 그건 기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편의 승리보다 원칙의 승리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제 승부, 제 선거에서, 승부가 걸려 있는 많은 국면에서, 선거에 불리하더라도 원칙을 포기한 일이 없습니다. 원칙과 원칙적 가치, 그것을 위해서 어떤 불리한 상황도 감수했고, 심지어 지난 번 대통령선거 직전 한 일주일간 엄청난 주위의 권고와 압력을 무릅쓰고 저는 제 원칙적 입장을 지켜냈습니다. 내가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이기면 오히려 지는 것보다도 못할 수가 있다.’ 아마 이 얘기는 들은 여러 사람의 증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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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베끼기

시사이야기|2009. 12. 1. 06:49

노무현 베끼기


1997년 9월 요르단 암만에서 망명 중이던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미샬은 차로 걸어가다가 관광객처럼 차려입은 백인들과 마주쳤다. 한 명이 코카콜라 캔을 따면서 미샬의 주의를 흐트러뜨릴 때 또 한 명이 미샬의 귀에다 분무기로 뭔가를 뿌렸다. 미샬의 운전기사가 쫓아가자 사내들은 차를 타고 내뺐지만 암만 시내 지리에 어두워 결국 운전기사에 의해 경찰에 넘겨졌다.

미샬의 귀에 들어간 것은 독극물이었다. 외상을 안 남기고 이틀 안에 사람을 죽이는 특수 약물이었다. 운전기사에게 제보를 받은 AFP 기자의 집요한 추궁으로 요르단 경찰은 캐나다 관광객임을 주장하는 두 명의 백인이 유대계 캐나다인으로부터 여권을 빌린 모사드 요원임을 캐나다 대사와의 대질을 통해 밝혀냈다. 후세인 국왕은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분통을 터뜨렸고 클린턴의 압력으로 네타냐후는 후세인에게 사죄하고 해독제를 의사 손에 들려 보냈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미샬은 겨우 살아났다.

칼리드 미샬이 이스라엘에 밉보인 것은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고 성전을 부르짖는 과격파라서가 아니었다. 미샬은 늘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고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말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지만 젊었을 때 카뮈의 실존철학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에 심취한 미샬이었기에 이슬람의 언어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언어로 말했다. 그의 입에서는 이슬람이라든가 성전이라든가 하는 말을 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부르짖는 험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보다 신사처럼 깔끔히 차려입고 인류 보편의 생존권을 차분히 요구하는 칼리드 미샬을 더 없애려 했다.

미샬의 하마스는 이슬람을 민족 항쟁의 구심점에 놓는다는 점에서 아라파타가 이끈 파타의 부패한 세속주의와는 다르지만, 어느 이슬람보다도 세속주의에 가깝다. 여자도 동등한 교육을 받고 얼굴과 온몸을 천으로 덮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마스가 신뢰를 얻은 것은 성심으로 의료와 교육과 복지를 챙겨서였다.

러시아와 미국이 가장 유착한 것은 사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다. 여자에게 투표권은커녕 운전면허도 못 따게 하는 사우디 같은 시대착오적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싸고도는 것이 미국이고, 체첸에서 예쁘장한 여자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첩으로 삼고 여자에게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이슬람주의 군벌 세력을 비호하는 것이 러시아다.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훨씬 먼저 성숙한 세속주의 체제를 이끌어간 전통이 있다. 스페인에서 무어인은 수준 높은 문명을 수백 년 동안 꽃피웠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억누른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잘 보존하고 라틴어로 번역한 것도 무어인이었다. 이슬람 통치자들은 기독교도와 유대교에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쪽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십자군 전쟁을 명분으로 내려오면서 이 개명 무슬림은 북아프리카의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에 져서 결국 북아프리카로 쫓겨나면서 세속 이슬람 문명의 전통은 끊겼다. 스페인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이슬람교도까지도 마녀재판으로 태워죽이고 찔러죽였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키운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였다.

전후 64년 만에 사실상 첫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가 폐쇄적인 기자단 제도를 손보려고 한다. 언론과 정부가 유착을 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일본 국민이 대를 이어 갚아야 할 천문학적 부채는 언론과 정부가 손쉽게 결탁하는 기자실 제도를 온존시킨 업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 의식은 바로 참여정부의 문제 의식이었다. 참여정부는 정부와 언론이 결탁하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본다는 생각으로 공직자와 기자가 같이 뒹구는 폐쇄적 기자단을 공개형 브리핑룸 제도로 바꾸려다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언론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어느새 기득권자가 된 오마이뉴스 같은 온라인 언론도 저주의 대오에 동참했다.

한국에서는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 그런 개혁을 추진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 공동체보다는 자기 밥통에만 눈이 먼 한국 언론에 의해 돌팔매질을 받았지만 하토야마 같은 생각 있는 지도자는 아마 뜨끔했을 것이다. 드디어 일본이 한국에 따라잡히는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개혁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토야마 정부가 새삼스럽게 폐쇄적 기자단의 문제를 들고나왔을 리가 없다. 하토야마는 한국이 노무현의 길로 먼저 질주할까 봐 가슴을 졸이다가 총리가 되자마자 노무현이 가려던 길로 일본을 차근차근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요구도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국가 부채의 주범인 토건 공사를 삭감하고 사람에 투자하려고 한다. 언론과의 유착도 정부가 먼저 끊겠다고 나섰다. 노무현 베끼기다.

해방 후 한국의 현대사는 일본 베끼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을 통해서 만들어진 숱한 근대어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교육, 방송, 정치, 행정 등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이 일본을 전범으로 삼아 만들어졌고 일본을 전범으로 삼아 뜯어고쳐져왔다. 한국의 영한사전은 아직도 영일사전을 베낀다. 머리띠를 두르면서 극일을 부르짖었지만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것도 사실은 일본식이었다.

노무현의 한국은 그러지 않았다. 일본보다 먼저 치고 나갔다. 외국인노동자에게 임금을 낮게 지급하는, 일본을 베껴서 받아들인 산업연수생제도를, 노동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는 내국인과 동등한 임금을 지급하는 고용허가제로 바꾸었다. 무역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안정된 시장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미적거리는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FTA를 먼저 체결했다. 일본이 안 했으니 우리도 안 해야 한다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일본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 노무현의 생각이었다. 하토야마는 그런 노무현이 두려웠을 것이다.

노무현은 칼리드 미샬처럼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다. 미샬이 이스라엘에 눈엣가시였던 것처럼 노무현도 일본에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국 정보원을 직접 보내 미샬을 죽여야 했지만 일본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일본의 이익에 복무해주는 숱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한국 사회 곳곳의 상층부에 포진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통치를 예찬하는 뉴라이트 세력 같은 일본 등뼈의 장학생들이 노무현 같은 한국의 등뼈를 알아서 발라내 주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무현 베끼기는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 일본에는 조중동처럼 부자 사주의 안위만을 챙기는 신문, ‘오한경대’처럼 관념 진보 이념만 챙기는 근본주의 언론이 드물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 노무현을 죽인 것은 근본주의 한국 언론이었다. 사익과 이념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한국의 근본주의자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cL) 개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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